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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에 콩깍지가 씌었다

2008-03-04     경상일보
 
새 학기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휴교령이 내려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제부터 황사가 심상치 않더니 결국엔 황사가 우리들의 발목을 묶고 말았다. "아이들은 등교하지 않지만 선생님들은 정상출근이래요." 그 한 마디에 오늘을 생각하며 뒤척인 지난밤이 약간 억울해지면서 무엇인가가 마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새로 오시고 세 분의 선생님이 새로운 얼굴이었다. 아이들이 없는 가운데에서 아침 모임이 이루어지고, 학급 담임이 발표되고 내가 맡을 아이들 명단이 주어졌다. 이미 학급과 업무는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 명단을 받고 보니 '잘 할 수 있을까?' 신규교사마냥 새삼스레 긴장이 되었다.

'6학년'. 언제부턴가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선생님들이 6학년 담임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5학년까지 착실하던 아이들도 6학년이 되면 변한다고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의욕에 찬 후배 선생님과 마음을 맞춰 6학년을 희망하였다. 그리고 통틀어 봐야 3학급뿐인 교사 3명이 봄방학동안 머리를 맞대고 6학년에 필요한 자료를 찾고 플랜을 만들었다.

아이들을 이해하자고 했다. 급격한 신체적 변화를 겪으며 최고학년의 지위를 누리다 보면 아이들은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하고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행동도 그렇게 해 버려 문제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최고학년으로서의 지위를 긍정적인 면에서 부각시켜 후배들에게 본을 보이는 프라이드를 갖게 한다면 모두들 힘들고 복잡하게 보낸다는 6학년을 자랑스럽게 보내게도 우리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단지 희망사항에만 머물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면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며 1년을 지내자고 약속했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 때 아이들에게 나눠줄 자기소개서와 학부모님께 보내는 가정통신문도 준비했다.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오늘을 맞은 동학년 선생님들은 실망의 낯빛이 역력했다. 아마 그들은 오늘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정말 무의미하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다. 나 또한 실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하루를 버는 것 같아 휴교령이 고맙게 느껴졌다. 어수선하게 아이들을 맞이하는 것보다 내가 맡을 아이들의 이름을 미리 알고 익힐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았는가?

새 교실에 올라와 책걸상의 키 높이를 맞추고 책상 줄도 바르게 정리했다. 6학년이 졸업하고 비어있는 교실이라 정리를 해도 때깔이 나지 않았다. 이런 교실이 내일이면 마술처럼 확 바뀌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빈자리에 주인이 된 아이들이 앉기만 하면 휑하니 때깔나지 않던 교실이 훈훈하니 윤나는 교실이 됨을 보아왔기에….

김종범, 김진목, 박동민, 이진우, 이경준, 장효민, 김형준, 최성우, 정민구, 김동현, 김동형, 권기범, 정욱제, 성영석, 오천용, 오범희, 김동걸, 강성호, 이소윤, 윤유진, 이소정, 박소연, 권나진, 강서영, 하목연, 김민지, 임수지, 박세연, 김나영, 강혜진, 박주연, 김소희, 윤지애, 손은현. 올 한해 나와 동고동락을 하며 나의 22대 제자가 되어줄 남자친구 18명과 여자친구 16명의 이름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내 마음을 도둑맞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 34명의 마음을 온전히 가져오고 싶다.

서로에게 눈꺼풀에 콩깍지가 씌운 듯 1년을 지낸다면 나는 선생님이라 불리는 행복함을, 그들은 초등학교 시절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멋진 6학년의 생활을 선물 받게 될 것이다. 오늘,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마음속에 심으며 서로의 마음을 갖는 데 걸리는 시간이 부디 짧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래서 지지고 볶고 싸우는 과정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학교생활이 즐거워질 수 있었으면 한다.


김향숙 중남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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