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옛 사진으로 보는 울산이야기]일산해수욕장 입구 빨래터 까치박거랑

13. 빨래터
1970년 복개전까지 담수와 만나는 일산진은 조개천국

2009-09-27     홍영진 기자
▲ 빨래터 일산천(1936) 제공=히나세(日生町)
거랑(河·川의 고어)에서 빨래하는 모습들은 자연이 살아있는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이 사진은 복개 전에 일산해수욕장 입구의 까치박거랑에서 하얀 수건을 두르고 조선옷을 입은 아낙네들과 길게 머리를 땋은 어린 딸이 정겹게 빨래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도란도란 속삭이는 이야기 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당시 생활용구인 나무통과 함석으로 만든 양동이도 보인다. 나무통은 나무 조각판을 하나하나 붙이고 대나무 태를 메워서 쓰던 우리네 전통 물통인데 지금은 사라지고 유물전시관에서나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1960년대 말까지만해도 나무통을 수리하던 할아버지들은 대나무 태를 지개에 매고 골목골목 다니면서 “통 메우소! 통 메우소!”외치던 소리도 정겨운 추억의 잔상이 되어 버렸다.

늘 맑은 시냇물이 흐르던 까치박거랑은 ‘까치설(작은 설)’과 같이 ‘작은 거레’라는 뜻인데 위쪽의 내(川)를 대청거랑이라 불렀다.

월봉사가 있는 절골 물과 대송 안목장의 천제 산골짜기 물이 대청마을 앞에서 만나서 일산진 바다로 흘러들었다.

담수가 적당히 흘러드는 바다는 조개의 천국이 되어 있었다. 진주조개·대합·맏조개·밀고동·삽살게 등이 지천으로 깔려있어서 여름날 근교 초등학교 아이들이 방과 후에는 이곳 일산진 불(백사장)에 모여 멱 감고 조개 잡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제 주먹보다 더 큰 조개를 댓 마리씩 잡고서야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1970년대 말부터 토지구획정리 사업이 추진되면서 하천과 도로는 모두 시멘트로 복개·포장되고, 주택·아파트가 밀집되면서 하천수는 고갈되고, 해안은 오염으로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장세동 동구지역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