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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진으로 보는 울산이야기]방어진 장덕걸 지금까지 이어지는 노전

19. 반티장수
반티(함지박)는 플라스틱으로 변했어도 노점상은 그대로

2009-11-08     박철종 기자
▲ 반티장수(방어·1936) 사진제공=히나세
일제 강점기 때 방어진 장덕걸(장터걸)에서 반티장수(노점상)들이 전을 펼쳐놓고 있는데, 당시 우리 할머니들의 모습이다. 그때에 불렀던 ‘장터거리’는 지금 ‘장덕걸’로 변했다.

반티(함지박)는 민속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되었고 지금은 플라스틱 물통(다라이)으로 소재도 사람도 바뀌었지만 지금도 장덕걸에는 할머니들의 노전이 그대로 대를 잇고 있다.

방어진 시장은 1925년 5월28일 개설되었다. 이날 지진제(地鎭祭)를 지내고 축하기념 각희(씨름)대회와 자전거대회를 연 3일간 열었다. 각희 우승자인 경주 외동 고준구(高俊具) 군에게는 한우 1마리와 우승기, 2등에게는 광목 1필과 수굼포(삽) 1자루, 3등은 우산 2개와 수굼포 2자루를 수여하고, 자전거 대회 우승자는 방어진의 배광렬(裵光烈) 군이 차지하였다.(시대일보·1925년 6월3일자) 이후 각희대회는 1929년 추석(우승 일산리 김영복), 1930년 10월(우승 일산리 김영복), 1931년 8월 추석, 그 후 몇 차례 이어져 왔으나 그 뒤의 기록은 찾지 못했다.

동구문화원 간행 <어풍대> 4집에 게재했던 필자의 산문시(詩) ‘방어진 사람들’을 방어진 시장통 분위기와 어울릴 것 같아 올려본다.

‘방어진 사람들은 바다를 품고 산다./ 뱃고동소리, 건착선, 바다 내~음/ 하얀 파도 위에 쇠갈매기 날으는/ 내 고향, 방어진 항구여!// 고등어, 멸치 떼 풍어 들 때면/ 골목마다 북적되던 팔도 뱃사람들/ 청루골목에 활기가 넘쳐나던 시절엔/ 골목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녔단다.// 고개 넘어 월봉골, 목장 사람도 더러는/ 농사일 제
▲ 장세동 동구지역사연구소

쳐두고 뱃일 나는데/ 오뉴월 누릇누릇 보릿삭은/ 아낙네들 손끝에서 익어 간다네.// 지금도 장터걸 채소 파는 할머니/ 생선회 명소 작은 축강 아지매들/ 도란도란 세상사는 이야기/ 또 하나, 방어진 유정일세.// 골새 마다 전해오는 고운 땅 이름들/ 목거랑, 서무끝, 뱃바우, 지리이/ 꽃방, 화잠, 대굼멀, 쑥밭 사람들/ 투박한 말투는 바다를 닮아서란다.// 방어진 목장/ 방어진 등대, 댕방, 시리섬/ 물건네 사람들은 동구를/ 모두 방어진이라 부른다.// 방어진을 고향으로 품고 사는 사람들/ 외지에 나가서도/ 바다내음 그리워/ 그리워서/ 숱한 밤을 눈물로 지세운다네’

장세동 동구지역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