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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득 교수의 뉴욕통신-6]뉴욕의 지하철

2003-03-03     경상일보
지난 2월16일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뉴욕의 눈은 다음 날 밤까지 이어졌다. 50여년만의 폭설이라 했다. 마침 월요일이 "대통령데이" 공휴일이었고, 눈이 끝난 화요일 시민들의 출퇴근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시민들은 스스로 집 앞을 청소해 길을 냈고, 시는 제설차로 주요 도로의 눈을 치웠다. 뉴욕의 지하철도 시민들의 발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뉴욕에 이번 눈이 내리기 시작한 때는 한국의 2월17일 아침으로 부끄러운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사건이 일어났다. 지하철 운행을 통제하는 종합사령실이나 기관사는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대신에 전동차의 문을 닫아 희생자를 크게 늘렸고, 잘못을 은폐하고 있었다. 시는 역사 안을 치우기에 바빴다. 뉴욕에서 눈을 치우는 사이 대구에서는 잘못을 지우고 또 현장을 치우고 있었다.

 철도는 안전하고, 정시성이 크고, 환경친화적인 교통수단이라고 학생들에게 강의했는데, 한 사람의 방화로 일순간 200명 가량의 희생자를 냈으니 정말 당혹스런 일이다. 참사 소식을 듣고 100년의 역사를 가진 뉴욕의 지하철을 되돌아본다.

 평일 평균 450만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뉴욕의 지하철은 매우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건설된 지 아주 오래됐고, 많은 노선이 있다. 역마차가 달리던 궤도를 노면교통의 한계로 도로 위를 달리는 고가궤도로 바꾸었다가 1904년에 지하철로 바뀐 것이 그 시초이다. 뉴욕의 지하철은 계속 확충되어 현재는 28개 노선이 700마일에 걸쳐 놓여져 뉴욕시민 46%가 이용하고 있다.

 뉴욕의 지하철은 맨해튼에서는 거의 지하지만 그 외는 주로 고가로 다닌다. 뉴욕의 지하철 역사와 지하 및 지상 구조물은 콘크리트구조물이 아니고 대부분 장대한 강철구조물이다. 평면으로 4차선 지하철로도 많으며 어떤 역은 10개 이상의 노선이 지나기도 한다.

 뉴욕의 지하철은 건설된 지 100년에서 60년이 된 오래된 철구조물로서 전동차가 지날 때마다 덜커덩, 삐거덕 쇠소리가 나지만 그래도 잘 다니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선로의 건설 보다는 유지관리와 승객의 안전에 예산을 배정하며, 메트로카드의 사용과 버스와의 환승 등 수요관리에 치중하고 있다.

 뉴욕의 지하철은 한때는 위험한 곳이라 했다. 1989년에 뉴욕을 두 차례 잠깐 들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지하철 입구가 너무 더럽고, 지하철이 범죄의 온상이란 얘기도 있어 타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변호사 출신의 줄리아나가 1994년 시장으로 취임하면서 공공안전 확보에 시정의 역점을 두어 각종 범죄가 대폭 줄어들었다. 8년 임기 동안 지하철 범죄도 연간 2만여건에서 3천500건으로 줄어들면서 안전이 크게 향상되어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의 지하철 이용이 크게 늘게 되었다.

 한국 지하철역은 입구가 넓고 깨끗하고 화려한 곳도 있으며, 전동차도 산뜻하고 좌석도 포근하다. 그러나 뉴욕의 지하철은 입구가 좁고, 승강장은 지저분하고, 객차의 좌석도 딱딱해 요즘같은 추운 날씨에는 앉기가 싫어질 정도이다.

 1994년 뉴욕 지하철에 폭발물이 터지면서 객차 안에 불이 붙어 48명이 부상했다. 화재가 다른 객차로 번지지는 않았으나, 이후 경찰관을 배치하고 지하철 안전의 기준을 대폭 강화하였다. 새로운 시설의 투자나 미관 개선 보다는 철도차량의 개선, 선로보수, 안전한 객차로의 개조 등에 예산을 많이 투자하게 되었다. 한국의 지하철 참사를 보면서 교통공사는 비상시 승객이 안전하게 열차와 역사를 빠져나오는 안전교육을 강화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달 내린 뉴욕의 눈은 아직 남아있지만 곧 봄이 올 것이다. 대구 참사가 일어난 지하철역 시커먼 모습은 곧 사라지겠지만 검게 탄 시민의 마음은 오래 갈 것이다. 뉴욕의 지하철에서 배울 점을 찾아보면서도 건설분야와 철도교통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이번 대구 참사에 대해 한없는 송구함을 느낀다. 멀리 지구 건너편에서 이번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울산대 교수·뉴욕포리테크닉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