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진으로 보는 울산이야기]해산물 진상 위해 제주도 해녀 불러와
26. 해녀와 무질 - 1900년대 들어 지역 처녀들도 무질 배워 구분 없어져
2010-01-03 박철종 기자
해녀를 잠녀(潛女)라고도 하는데, 자맥질을 잘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1913년 5월7일 매일신보 기사에 ‘울산해조분쟁 해결’이라는 제목 아래 이런 내용이 있다. “…석화채(石花菜)·은행초(銀杏草)는 지금으로부터 17~18년 전부터 제주도민의 해녀가 연년이 이 지방에 와서 잠수 채취에 종사하여 왔고…생산물의 과반은 제주 해녀가 채취한 것이오. 또 제주 해녀의 채취가 필요할 시는 매년 부산과 목도에 도항하는 해녀와 상당액의 선급금과 채취물의 매매 약속을 한 후에 연안의 적정한 곳에 가서 잠수 공급을 하고 있으나, 향후에는 어업령에 의한 공동시설의 설치와 어업조합의 설립을 요구하여 관철하였다.”
이때부터 제주 해녀들은 울산 연안 곳곳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뭍의 처녀들도 무질을 배워서 그 구분이 없어졌다. 해녀들이 작업하는 모습은 울산의 해안가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주로 해산물을 채취, 미역돌을 맬 때나 미역을 채취할 때, 집단으로 자맥질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지금도 방어진 서무끝(섬끝) 마을에 가면 해녀들이 성게·멍게·해삼·어패류 등을 채취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 사진의 배경이 바로 이곳 동쪽 소바위 해안인 것으로 보인다.
장세동 동구지역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