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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터치]가능성 보다 실망감이 앞섰던 한국형 블록버스터

(1)전우치

2010-01-03     박철종 기자
필자가 ‘전우치’라는 인물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인,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에서였다. 신통방통한 도술을 써서 탐관오리를 혼내주고 가난한 백성을 도와주는 전우치의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해 할머니께 똑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들려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그런 전우치가 영화화 되었기 때문에 할머니에 대한 아련한 어린 시절 기억과 함께 영화 개봉을 기다리게 되었다. 또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 ‘타짜’, ‘범죄의 재구성’ 등을 영화화하여 흥행에 성공한 최동훈 감독이었고, 출연 배우 역시 주연인 강동원·김윤석·임수정 뿐 아니라 백윤식·유해진·염정아 등 조연 역시 당대의 흥행 배우들을 모두 모여서 만든 영화이었기 때문에 필자가 생각했던 전우치와 어떻게 다른 이야기를 풀어갈까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이야기는 500년 전, 조선시대부터 시작한다.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이 요괴의 손에 들어가자 신선들은 당대 최고의 도인인 화담(김윤석 분)과 천관대사(백윤식 분)에 부탁해 요괴를 봉인하고 만파식적을 반으로 나눠 두 사람에게 맡기게 된다. 그러나 천관 대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반으로 나뉘어진 만파식적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그의 망나니 제자 전우치(강동원 분)가 스승의 살인 누명을 쓰고 그림 족자에 봉인된다. 그 후, 2009년 서울에 봉인되었던 요괴가 출연하고 세 명의 신선들은 이들을 다시 잡아들이기 위해 전우치를 족자 봉인에서 풀어주고, 화담은 나머지 반 쪽의 만파식적을 자기 손에 넣기 위해 전우치와 대결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처음부터 이렇게 이야깃거리를 충분히 갖고 시작했지만 ‘타짜’가 이미 잘 만들어진 허영만 화백의 시나리오를 영상화시키는 과정만 필요하였다면 ‘전우치’는 전래의 인물에 감독의 상상의 옷을 입혀야 하는 과정이 추가되어 있었을까? 어설프게 조각조각 짜인 시나리오는 매력적인 소재와 역량 있는 배우들이 있음에도 영화에 몰입하기 어렵게 만든다.

겉으로는 도인이지만 그 속은 요괴였던 화담의 이중성에 대한 언급은 물론, 그가 만파식적을 소유하려는 이유도 모호했다. 저승사자 복장을 하고 도술을 부리는 전우치는 500년이라는 시간을 넘나들면서도 전혀 문화적 차이에 따른 혼란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도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다. 정신 없는,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에 비하면 형편없는 컴퓨터그래픽(CG)과 편집광적으로 반복되는 도술 장면은 주인공들의 캐릭터 찾기를 더욱 더 오리무중으로 만든다. 그냥 롤플레이 게임 속의 주인공들 처럼 정신없이 날아다니고 부수기만 한다. 캐릭터는 사라지고 단지 최동훈 감독과 출연 배우들의 전작의 장면들의 어색한 짜깁기만 보인다. 잘 짜깁기가 됐으면 퍼즐이 됐겠지만….

전우치의 스승으로 분한 백윤식은 ‘타짜’의 평경장, 요조숙녀에서 요괴로 변하는 임수정의 모습에서는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 까불거리는 초랭이 역의 유해진 역시 ‘타짜’의 광열의 모습, 푼수 끼 넘치는 염정아의 모습에서는 ‘범죄의 재구성’의 인경의 모습이 생각난 것은 필자 뿐이었을까. 이 모두를 자신의 상투적인 연기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 연기자의 연기력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전우치 역의 강동원은 조승우의 능글맞은 눈빛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앵앵거리는 그의 콧소리는 도대체 전우치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게 했다. 게다가 영화 장면에 녹아내리지 못하고 끊어지는 듯한 음악과 음향효과로 마무리작업에 대한 불만도 느끼게 한다. 만회를 위한 마지막 장치였을까? 영화 도입부와 마지막 부분의 ‘바다 타령’은 실소마저 짓게 한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은 화담으로 분한 김윤석이라는 배우의 발견이다.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고, 도인의 모습으로 나올 때는 물론 악한 요괴로 정체가 밝혀진 후에도 품위를 잃어버리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일정함이 힘들게 영화의 전개를 유지하고 있었다.

▲ 노승현 신장내과 전문의

‘타짜’에서의 섬뜩한 아귀, ‘추격자’에서의 악덕포주, ‘거북이 달린다’에서의 무능한 형사. 모두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그 역할을 서로 다르게 표현하는, 뭐라 그럴까? 충격에 대한 완충능력이 좋은 영화배우로서의 김윤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시간 죽이기를 위하거나 꽃미남, 강동원의 팬으로 영화를 즐기는 데는 아무 문제없는 영화이지만.

가능성 보다는 실망감이 앞섰던 영화, ‘전우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