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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을 주목한다]“그의 혼이 담긴 작품에 밀려오는 감동”

<1> 이상열 화가

2010-01-21     전상헌 기자
▲ 이상열 화가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에는 갤러리가 있다. 자연스레 많은 작가들을 만나게 되고 작품을 접할 기회도 많다. 작품을 접하다 보면 똑같은 작품인데도 시간이 지나면서 보는 느낌이 첫날 보는 것과 달라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바뀌면서 계절을 다르게 느끼는 것은 당연할진대 같은 작품을 두고도 마음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변하는 것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을 철거할 때마다 벌써 끝났나 싶어 아쉬울 때가 많다. 아직 여름까지 느끼고 있는데 철수라니 입맛만 다시면서 그냥 볼 수 밖에.

작가들을 만나면 흔히 왜 그림을 그리느냐고 묻는다. 사람들마다 하는 이야기가 달라서 재미가 있고 다르게 표현하는 것 같았는데 자꾸 이야기하다 보면 같은 이야기일 때도 있다. 그래서 작품과 함께 작가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3년 전쯤 어느 날로 기억된다. 미대 졸업생 작품전이 있었고 애프터(뒤풀이)에 참석했다. 소주잔이 한 잔씩 돌아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2차 이야기가 나오자 어느 교수님이 같이 참석하자고 권유했다. 미술학도들의 술이 보통 아니라는 의미심장한 멘트와 함께. 필자도 주량은 웬만큼은 되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다른 술 분위기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필자는 새로움에 대해 항상 솔깃한데도 그날 만큼은 학생들과 처음 보는 자리에 술을 많이 한다는 게 부담이 되기도 했고 다른 약속이 있어 다음 기회를 핑계로 헤어졌다.

그 후 얼마가 지나 다른 전시회 모임에서 자주 보는 낯익은 작가들과 자리를 하다 그날이 대학 축제라며 미대 학생회 부스에서 음식도 팔아줄 겸 가자고 했다. 사진 하시는 권모, 동양화 하시는 박모, 미협의 주모, 미대 교수들과 같이 그 현장에 갔다. 거기서 파전과 막걸리를 시켜 매상을 올려주면서 술판이 이뤄졌다. 초면의 사람들과 정식으로 인사를 하고 술도 권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게 됐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화가 이상열씨다.

첫 인상은 뭔가 쉽게 가까이 하기에는 어렵고, 그렇지만 나쁘게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겸손한 것 같으면서도 무대포 기질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초면에 술잔을 서로 권하고 학생들과 같이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술을 마셨는지 측정되지 않을 만큼 모두 거나하게 취했다.

술판이 파장으로 가는 듯 하더니 미대 졸업생이 운영하는 와인바로 옮겨 한 잔 더 하자는 누군가의 제안에 모두가 옮겨가게 되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술을 마시는지 한 번 겨뤄보자는 심사도 있었고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을 것 같다는 호기심으로 무조건 따라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던 터였다.

와인 잔이 돌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 두 명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간도 새벽 2시가 넘어 3시로 가고 있고 그러던 중 어느 누군가가 공간이 비어있는 홀로 혼자 나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이었다. 술버릇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진지했고 진지하게 보기에는 조금은 우스웠다. 뭔가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같으면서도 가슴 속 응어리를 토해 내지 못해 몸부림치는 애절한 눈빛, 뭔가 응어리가 져 있지만 그걸 토해 내지 못해 미칠 것 같은 표정.

그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리고 싶다. 그래, 그리라고. 작가라면 혼이 담긴 위대한 작품 적어도 한 개는 그려야 되지 않겠느냐고. 그 한 작품을 위해 당신의 전부를 걸 수 있겠느냐고. 근데 그런 사람이 안 보인다고. 하나를 위해 미쳐야 한다면 미칠 수 있느냐고. 할 수 있겠느냐고’

그는 할 수 있다는 웅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애절함을 눈빛 속에 담아 필자를 무서우리만치 째려보고 있었다. 바로 이상열씨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 다음에 또 3차… 마지막에는 찌개를 시켜 뭔가를 먹으면서 또 한 잔을 하고 나서니 날이 밝아오는 게 아닌가. 술김이라도 날이 밝으니 누가 술에 절은 필자를 알아볼까 두려워 다음 기약하고 헤어졌다.

재작년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울산미술대전 특별상 작품을 선정하게 되었다. 미술에 대한 수준이 없으니 알아서 선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주최 측에서 선정하더라도 직접 작품을 보고 관여를 해 달라고 해서 갤러리로 갔다.

많은 작품들이 걸려 있어 1·2층 전 전시장을 돌면서 그냥 건성으로 보게 되었다. 하도 작품이 많으니 세심하게 볼 수도 없고…. 어차피 내가 선정할 것도 아닌데 싶기도 했다. 그런데 내 가슴에 뭔가 불을 확 지르는 작품이 보였다.

▲ 채종성 CK치과병원 대표원장

동행하던 작가에게 그 작품이 어떤지를 묻게 되고 저 작품을 선정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선정이 되었는데 나중에 보니 공교롭게도 이상열씨 작품이었다. 그것도 인연인지 자주 볼 수는 없으나 항상 마음 속에 울산에서 수백 년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 혼이 담긴 작품을 그리는 이상열을 상상하곤 한다.

그 한 작품 만을 CK갤러리에 전시하고 싶다. 그의 애절한 눈빛이 만들어 낼 더 위대한 작품을 기다린다.

채종성 CK치과병원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