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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인문강좌]역사는 과거-현재-미래의 끊임없는 대화

<제3강> 역사야 같이 놀자

2010-02-01     박철종 기자
역사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인간의 집단적 경험 주목
과거 사실들 현재와 상관관계 있어…미래 유추도 가능
역사는 미래 향해 계속 진화…역사와 현실사회 관심 가져야
▲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한 장면.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외부 강의를 하러 갔다가 친구를 만났다. 공부를 곧잘 하던 그 친구는 유독 역사 과목을 힘들어 했다. 그러던 그가 역사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이다. 얼마 뒤 울산지역 시민인문강좌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여성인문학강좌에서 다시 여성들을 만났다. 내 친구 얘기를 했더니, 모두 손뼉을 치며 공감했다. 역사 공부는 외우는 일의 연속이었기에 외워도 외워도 돌아서면 헷갈렸다. 그러니 당연히 재미없고 힘들기만 했다. 그것이 학창시절에 우리가 만난 역사였다. 이런 기억을 가진 이들에게 왜 다시 역사를 이야기해야 할까.

얼마 전 드라마 ‘선덕여왕’이 높은 시청률 속에서 방영됐다. 역사의 실체로서, 우리 역사에서 흔치 않는 여왕의 일대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됐다.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퓨전 사극이긴 하지만 도망한 노비와 그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추노’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이들 드라마가 대중의 흥미를 끄는 것은 배우들의 멋진 연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역사 드라마 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게다. 우리는 역사 드라마 속 인물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드라마 속의 과거에서 현실을 읽어낸다. 현재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그 속에서 발견한다. 아니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역사 속의 사실과 인물들은 과거 속에 있지만, 역사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종종 매체를 뛰쳐나와 우리와 소통하기도 한다. 그러니 재미있을 수 밖에…. 역사 공부가 이와 같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역사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역사의 주인은 언제나 인간이었다. 우리가 아이티의 지진 참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진이 인간사회에 영향을 미쳤고, 그러한 불행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사학은 개별적이거나 본능적인 인간의 경험이 아니라 집단적인 경험에 주목한다. 1923년 일본 간토지역에서 일어난 지진을 한국사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것은 지진의 공포 속에 일본인들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로 6000여 명의 한국인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집단경험으로 기록된 역사는 모두 진실인가. 이것은 우리의 착각이다. 역사는 과거 누군가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인식도 여기에서 나온다. <삼국사기>에는 삼국시대에 대한 고려시대 지식관료의 인식이, <고려사>에는 조선시대 지식관료의 인식이 배여 있다. 개인의 일기 만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책을 서술한 사람들의 인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정치권력에 의한 서술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처럼 누가 어떠한 관점에서 썼는가에 따라 역사 기록은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에 의해 기록된 역사를 우리는 배운다. 과거에 실존했던 사실이라기 보다는 역사가의 연구 결과를 공부하는 것이다.

얼마 전 익산의 미륵사 터 석탑을 복원하기 위해 해체하는 과정에서 석탑을 세우게 된 경위를 밝히는 자료가 발견되었다. 백제의 유력 가문 출신인 사택적덕의 딸인 무왕의 비가 소원하여 미륵사 탑을 세웠다는 내용이었다. 신라의 공주이자 무왕의 비였던 선화가 세웠다고 알고 있던 우리에겐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물론 학계에서는 선화의 실체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있다). 이것은 새로운 자료의 발굴이나 연구 결과물의 축적으로 역사는 다시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역사는 이렇게 계속 다시 쓰여질 것이다.

이즈음에서 다시 의문이 생긴다. 언제 바뀔지도 모르는 역사적 사실들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그것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과거에 사실들이 분명히 실재했고, 그 사실들이 현재의 내 삶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그 전쟁에서 한 쪽에 의한 무력 통일은 불가능하며, 엄청난 피해와 해결과제 만을 남긴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배웠다. 현재 서해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북 사이의 군사적 행동이 충돌로 나아갈 것을 염려하는 것도, 군사적 행동이 교전으로 이어질 경우 어떠한 불행한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역사가 되풀이되므로,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분명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다는 것은 역사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처럼 역사는 반복되지 않았다. 되풀이되는 듯한 인상을 줄 수는 있지만 똑같은 사건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매 순간 역사 무대가 달랐고, 배우들이 달랐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 과거라는 원인이 작용해 현재를 낳고, 현재가 과거가 되는 날, 미래는 새로운 현재가 된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대상으로 한다. 그렇다면 역사는 과거
▲ 원영미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강사
를 향해 있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과거에 주목하는 것은 역사가 미래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류의 삶이 좀 더 행복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과거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다.

미래가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장담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우리의 실천이 미래의 내용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굽이쳐 흐르는 강물처럼 역사의 시간도 끝없이 흘러갈 것이다. 평야를 만나 곧바로 나아갈 수도 있고, 바위산을 만나 휘돌아갈 수도, 그래서 흐름이 느려질 수도 있다. 그래도 강물은 흘러간다. 물길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대와 나, 그리고 우리이다. 누군가의 미래였고, 곧 누군가의 과거가 될 현재의 역사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 역사와 현실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영미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