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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口述)로 정리하는 울산이야기]달밤의 추격전 끝 도굴꾼 부자 검거

2.도굴범을 쫓아낸 다전마을 지킴이 - 서진욱 전 울산향교 전교

2010-02-03     홍영진 기자
문화재 인식 희박하던 80년대 도굴꾼 활개
한밤 귀가하다 조상묘 파헤치던 일당 발견
경찰·아들·학생 방범대원 등 양쪽서 덮쳐
범인출소 후 ‘해코지’ 불안 유치장 면회도
▲ 서진욱 전(前) 울산향교 전교가 중구 다운동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진욱(徐鎭昱·75) 전 울산향교 전교는 7대째 다전마을을 지켜왔다. 남목 부근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었던 그의 선조가 임진왜란을 피해 범서 및 다운동 일대로 일가를 옮긴 이래 자자손손 지금에 이르기까지 집터와 산, 전답 등을 지키며 살고 있다.

서 전교는 요즘 산기슭 어귀에 초당을 짓고 후학들을 가르치는 중이다.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차나무를 키우고, 가끔씩 죽염을 굽기도 한다.





지난해 연말에는 울산시립박물관 건립에 동참하는 뜻으로 아들과 함께 고이 간직해 오던 유물과 손때 묻은 추억의 물건들을 울산시에 기증했다.

이들이 기증한 물건은 신라토기 13점, 석기 5점, 저울 2건, 태극기 1점, 담배쌈지 1점 등 모두 22점. 그 중 신라토기는 신라 초기 울산지역의 진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들 기증품은 오는 2011년 개관 될 울산시립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울산향교 전교로서 유림 본연의 자세와 교리를 퍼뜨려 온 그에겐 이렇듯 우리 지역 문화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이 있다. 그의 집터가 중구 다운동 일대 드넓은 고분군에 자리한 터라 알게 모르게 문화재와 얽힌 숨은 이야기가 많다.

그 중에서도 지난 1980년대 초반 겪었던 도굴범과의 인연은 아직도 뇌리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드라마틱한데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이 넘치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할수록 안일하기 그지없었던 당시의 문화재 인식을 느끼게 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묘한 기분이 맴돈다.

■달 밝은 밤마다 도굴범들이 넘쳐
때는 1982년 12월29일. 섣달 보름밤의 일이다. 청년모임인 모 구락부 회원이었던 서 전교가 시내 성남동(현재 중앙동)에서 송년회를 마치고 늦은 밤 귀가를 할 때였다. 보름달이 밝아 ‘도굴범들이 또 기승을 부리겠구
▲ 다운동 골프연습장 부지 발굴전경. 1993년과 1995년 창원대박물관 조사에서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10여기가 확인됐다.
나’ 싶은 차에 아니나 다를까 조상들의 묘를 모신 산 중턱에서 도굴꾼들이 한창 작업을 벌이는 것을 목격했다.

당시만 해도 문화재라는 인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무렵이다. 시내 한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방학과제물로 땅 속에 묻힌 골동품을 파오게 했다.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은 산으로, 들로 다니며 흙 속의 그릇이며 쇠조각을 파내어 선생에게 갖다 바치면 그만이던 시절이었다. 묘소나 밭을 관리하다 신라 토기가 불쑥 나와도, 고이 모시기는 커녕 ‘고분터에서 나온 것을 집에 두면 재수가 없다’며 내다 버리기 일쑤였다. 그 소식을 접한 도굴꾼들이 달 밝은 밤마다 주민들의 눈을 피해 다운동 일대 산 속을 마구 헤집고 다녔던 것이다.

“그 놈들이 얼마나 들쑤셔 놓는지…. 문화재보다 조상 묘가 더 걱정됐지요.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온 아들, 파출소에서 나온 순사, 학생 방범대원 등과 함께 두 조로 나뉘어서 도굴범들을 덮쳤지요.”

순경과 서 전교는 산 위에서 살금살금 내려갔다. 아들과 방범대원들은 산 아래에서 이들의 퇴로를 막을 작정이었다. “꼼짝마라 경찰이다!”하고 외치니 바로 눈 앞에서 한 도굴범이 달아났다. 망을 보던 도굴범의 한 패였다. 땅 속을 헤집던 나머지 두사람 중 한명은 현장에서 바로 잡혔다. 그 중 젊은 듯해 보이는 마지막 한명은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 드넓기만 하던 밭을 가로질러 도망을 갔다. 헐레벌떡 달밤의 추격전을 벌인 뒤 아슬아슬하게 도망자를 붙잡았다.

날이 밝은 뒤 서 전교는 그들이 사기, 문화재 절도, 신안앞바다 토기사건 연루 등 전과 8범에다 출소한 지도 3개월밖에 안된 전문범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만 등골이 오싹하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두 사람이 부자(父子)지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 가족들이 신고자를 가만 둘 리 없다는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경찰서 조사과에서 진술하는데 혹여 ‘이 놈들이 찾아와서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하는 생각 때문에 제대로 된 진술보다는 “주범은 놓치고 그 밑에 딸린 놈들일 뿐”이라는 소리 만을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도둑 잡아넣고 면회가기
서 전교는 새해가 밝고 그 해 정월이 다가도록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뒷마당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 놈이 찾아왔나’ 싶어 깜짝깜짝 놀랐다. 퀭한 몰골로 서 전교가 그들을 다시 만난 때는 두 달여가 흐른 뒤였다.

남부경찰서 면회장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도굴범을 대면한 서 전교는 떨리는 마음을 누르고 “차라리 우리 집 소를 훔쳐갔다면 내 이러지 않았을 것이오”라고 운을 뗐다.

다행히 도굴범은 “선생님이 말씀을 잘 해주신 덕에 8개월 형만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답례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저 출소하면 꼭 인사가겠습니다”였다.

화들짝 놀란 서 전교는 자기도 모르는 새 손사래까지 치면서 “그러지 마시게” 만을 거듭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식비까지 두둑히 챙겨준 뒤 집으로 돌아온 서 전교는 그날밤 꿀맛 같은 잠에 빠져 다음날 해가 중천에 이를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글=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aykt6.com  사진=김동수기자 photolim@ksilbo.aykt6.com

자문=박채은 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