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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인문강좌]일상생활에서 오는 잠깐의 여유 만끽해야

<제7강> 인문학적 삶이란 무엇인가

2010-03-29     박철종 기자
직장생활·가사활동에 여유 잃고 사는 현대인들
무엇을 위해 사는지 허무감에 빠지는 경우 잦아
스스로 삶의 의미 일깨우고 격려할때 허무 극복
▲ 인문학은 인간을 사랑하는 학문이다. 봄바다를 보면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을 때 회피하지 않고 즐기는 것도 자신을 돌보며 사랑하는 것이다.
모처럼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이 글을 쓴다. 올 봄은 유난히도 일기가 불순하다. 잦은 눈비에 흐린 날이 많아 햇빛이 그립고 우울하기 까지 한다. 그래도 그만한 곳에 자리잡은 매화 개나리 목련은 벌써 꽃을 피웠다. 아무렴 봄은 오고야 말았다. 반갑고 고맙다. 엄격하고 큰 자연의 섭리가….

인문학적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뜬금 없고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잠깐의 여유를 갖는 것. 면도를 하거나 혹은 화장을 하다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듯 그렇게 우연히 자신을 만나는 소박한 여유를 갖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늘 바쁘고 피곤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부터 직장을 가진 남자라면 선잠에 세수하고 까칠한 입맛에 건성으로 아침 들고 시간에 쫓기어 정신이 없다. 차를 몰든 출근버스를 타든 마음은 이미 사무실 책상에 가 있고 오늘 할 일에 벌써 머리가 무겁다. 상사에게 보고해야 할 일, 옆 부서의 협조를 구할 일, 협력업체와 협의할 일, 감독관 접대할 일…. 오늘은 왜 이리 교통체증이 심한가. 어서 차를 한 대 구입해야 할 터인데. 문득 와이셔츠가 걸린다. 찾는 셔츠가 아직 다림질이 안 되었단다. 집사람은 하루 종일 무엇을 했단 말인가. 짜증이 인다.

깜짝 놀라 잠을 깨며 천근같이 무거운 몸을 들어 캄캄한 아침을 맞는 주부라도 마찬가지이다. 죽은 듯이 잠을 자는 아이들을 잔인한 마음으로 두드려 깨우며 마음이 갈라진다. 먹지도 않을 아침을 챙기며 두어 번 더 아이를 깨우고 간식을 준비한다. 성적이며 학원비며 아이의 건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니 이 녀석 오늘 지각이나 하지 않을까. 무엇인가 투덜대며 무겁게 집을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이 밉기만 하다. 어젯밤 늦게 들어와 무슨 공무라도 보듯이 오늘 집에 별일 없지 라는 등 몇 마디 묻고 쓰러진 남편을 위해 바쁘게 아침상을 차린다. 동시에 양말 셔츠를 챙기며 손이 바쁘다. 몸만 쏙 빠져나간 이부자리며 아직도 켜져 있는 아이들 방의 컴퓨터며 산지사방에 흩어진 양말 옷가지….

그리고 어쩌다 문득 화장실 거울이나 엘리베이터 거울에서 자신을 만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참 막연하고 쑥스럽고 어색한 질문이다. 마치 몽롱한 사춘기 때에나 떠올랐을 질문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사회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어머니로서, 한 남자 혹은 여자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나의 삶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살고 있는지 모른다면 자신의 삶이 너무나 무의하지 않겠는가. 그냥 단순하게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그 행복의 토대가 되는 돈을 벌기 위해서 라고 대답한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행복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혹은 나는 정말 가족을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렵다. 아 그래도 내 삶은 얼마나 허무한가.

인간은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이 말은 곧 삶의 근본을 뒤흔드는 허무와의 싸움을 말하는 것이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일깨우고 가치를 생각하며 그런 일에 매진하는 것,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것으로 스스로를 격려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허무와 무기력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으며 무엇을 가치있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이해한다면 오늘 열심히 고통스럽게 일하는 의미를 알게 되고 스스로 곧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합심과 희생을 이해한다면 남편과 아내의 만남이 고마울 것이며 아이들을 바르게 훈육할 수 있게 될 것이며 험한 세태에 불안하게 휩쓸리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 막연하고 어려운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을까. 사실 누구도 그 답을 명쾌하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갈망하는 바가 있다면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히 답을 구하는 여러 방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인간을 사랑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은 우리의 머리를 맑게 하여 세상을 바르게 보게 한다. 역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길을 바르게 걷게 한다. 문학과 예술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주위를 두루 살피게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무의미와 싸워 스스로와 서로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당위를 발견했고 그 흔적들을 모아 인문학을 만든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의미있게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의 치열함으로 자신을 돌보며 사랑한다는 것이다. 잠깐 생각을 멈추고 하늘을 우르러 보거나, 거울을 보거나, 거리의 봄꽃을 보거나 살짝 부는 바람을 느껴보자. 그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회피하지 말고 즐기자. 그리고 열망하자 아주 사소하고 단순한 것이다.

▲ 유형택 울산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나의 여성 인문학 강의는 그림 그리기로부터 시작했다. 크기나 재료나 도구에 상관 없이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기,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주로 다루는 물건들을 그려 보기, 창문을 통해 보이는 세상 그려 보기,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그려 보기, 그리고 자신이 품었던 꿈을 그려 보기. 각각 한 주씩 과제를 수행하며 강조한 것은 무심히 여유를 갖고 그려 보자는 것이었다. 울음과 한탄과 허무와 불안이 두서 없이 난무했지만 한 인간, 여성, 주부 그들을 둘러 싼 가정, 사회 환경들을 있는 그대로 꺼내보려 우리는 애써 노력했다. 그럴수록 그들의 열망은 커져갔고 눈망울은 맑아졌다. 지금도 그들의 아픔과 열망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나의 문제로 삼아 사랑하고 있다.

매화향기가 살짝 코끝을 스친다.

유형택 울산대학교 미술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