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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인문강좌]내면의 목소리에 마음 열고 매 순간 최선을

<제8강> 삶의 순간을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아가기

2010-04-12     박철종 기자
삶은 순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 때일 뿐
그러나 그 한 때를 최선을 다해 살 수 있어야
▲ 울산대 인문과학연구소가 지난해 가을 남창역 앞마당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작년 가을 어느 햇살 따뜻한 날, 남창역 앞마당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울산대 인문과학연구소가 마련한 인문주간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자리였다. 청중은 동해남부선 기차를 타고 송정 바닷가를 다녀온 시민들이었고, 연주자는 현대중공업의 지원을 받아 창단된 울산대 USP 챔버오케스트라의 젊은 단원들이었다.

모차르트의 세레나데로 시작해서 익숙한 영화음악들, 그리고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를 거쳐, 민요 울산아가씨에 이르는 다채로운 선율들이 간이역 마당을 꽉 채웠다. 이날은 남창장이 열리는 날, 장터까지 멋진 연주소리가 퍼져나갔다.

의자도 없는 맨바닥이었지만 이 순간 만큼은 세상의 모든 음악이 전해주는 그 아름다움으로 마음껏 행복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진행된 간이역 여행에서 기다림과 느림의 의미를 음미해 본 덕분인지, 연주회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간들은 더 이상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 그것 역시 삶의 소중한 순간일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날이었다.

생활 속의 인문학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중요한 것은 인문학이란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인문학을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만일 잠깐 동안이라도 멈추어 서서 우리 자신을 몰아붙이는 세상의 속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그 순간 만큼은 인문학적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맹목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지 성찰해 보는 것, 그것이 인문학이다. 혹시 애초에 추구했던 가치를 망각한 채 수단을 목적으로 삼아 매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것, 그것이 인문학이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노력과 열정을 다 바쳐서 내달린 사람에게 가장 슬픈 일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도달한 목표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일이 아닐까.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는 삶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 그것이 인문학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는, 모든 대답이 다 정답이 될 수 있다. 왜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지를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인생의 정답은 ‘자기 앞에 놓인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모색하는 과정’ 그 자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자기 자신의 삶 앞에서는 한 사람의 예술가이다.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고 다듬듯 각자의 삶을 꾸려간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허공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욕망과 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장소에 의해서 규정된다. 60년 전, 30년 전, 우리 윗세대가 꾸었던 꿈은 지금의 우리와 다르다. 왜 그럴까. 그것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역사와 문화이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가 속해 있는 시대와 장소의 역사문화적 맥락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은 내 가족, 이웃, 동료, 나아가 동시대 사람들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확산되며, 우리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갈 후속 세대와 소통하는 과정이 된다.

위대한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하나 같이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삶의 진리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입적하신 법정 스님은 삶을 ‘순간’으로 정의했다. 순간의 존재 그 자체가 삶이라고 했다. “삶은 순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 때일 뿐. 그러나 그 한 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기 삶의 순간에 대해 투명한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 어떤 순간이라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을 통해 우리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을 재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이미 생활 속의 인문학자이다.

▲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내가 존재하는 장소에서 어떻게 집중하는가에 따라 조그마한 간이역 앞마당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를 들을 수 있다. 태화강변의 환한 벚꽃들 속에 계절을 거스르는 찬바람을 뚫고 피어오르는 자연의 섭리가 온전히 담겨있다. 더불어 있음으로 해서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진달래와 개나리 같은 봄꽃들에게 공존의 미학을 배운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 알갱이 하나하나가 사람살이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나 혼자만 잘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걸 웅변하고 있다.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시민인문강좌든 인문주간행사든, 그것은 작은 계기에 불과하다. 내 안의 목소리에 마음을 열고 자신의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일수도 있지만, 조그만 발상의 전환을 통해 문득 그렇게 실행해 버리면 되는 그런 소박하고 단순한 일이기도 하다.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