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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1주년특집]선생님의 가르침 아직도 귓가에 생생한데…

■ 스승님 전상서

2010-05-13     홍영진 기자
1979년 밀양 무안중학교 이동배 선생님께

나만의 선생님!

이렇게 부르면 하하하, 웃기만 하시겠지요. 그럼 아닌가요? 볼이라도 부을라치면 맞아, 맞아! 더 큰 웃음으로 답해주실 선생님.

30년 전, 우리는 시골중학교에 갓 부임한 총각선생님과 열다섯 살 여학생이었어요. 임시부임을 하셨던 선생님께선 6개월 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가셨지요. 선생님과 저는 편지를 나누면서 특별한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엮었습니다. 언제나 저의 편이셨던 선생님. 늘 그리워하였지만 안부를 여쭙지 않고 보낸 세월 몇 굽이.

작년 제가 수소문하여 전화를 드렸을 때 단번에 기억하시던 선생님. 저는 분홍 꽃물처럼 찰랑거리는 원피
스를 입고 선생님을 만나러 갔어요. 저와 연락이 끊긴 후부터 신앙생활을 하셨다는 선생님께선 신부복만 안 입었지 신부님처럼 맑았어요. 우린 늘 가까이 지낸 사람들처럼 정다웠어요. 달라진 게 있다면 각자의 가족이야기가 비빔밥의 나물처럼 섞였다는 것.

선생님께서 산 아래 있는 사찰에서 나무빗을 사주셨어요. 살이 촘촘하니 맑은 소리가 나는 반달빗. 선생님께 드릴 마땅한 선물을 고르지 못해 망설이는 제게 그러셨어요. 이 못난이 자체가 당신에게 귀한 선물이라고. 의기양양해진 저는 금낭화가 가득 핀 길에서 앙큼하게 말했어요. 선물해 주신 빗으로 머리를 빗겨 달라고요. 선생님께선 사르륵 사르륵 제 머리를 빗겨 주셨어요.

선생님, 전 알아요. 저의 삶이 설익은 밥 같다는 것을요. 누군가의 속을 덥히고 채워주기보다 저를 익혀줄 이해와 사랑을 필요로 하는. 그런 저를 위해 매일 기도하시는 선생님, 그 기도로 더 착하고 순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요즘은 선생님께 편지 쓰는 일도 하지 않고 선생님을 생각하는 일도 잊어먹습니다. 그래도 서운타 않으시고 그저 저의 안녕을 염려해 주실 선생님. 오늘은 그동안 안부 전하지 못한 송구함에 꿀처럼 달콤한 편지를 보냅니다. 부디 취하셔서 꽃그늘 아래 한 잠 주무셔요. 꽃 몇 점 나비처럼 얼굴에 앉아 간질이는 꽃잠을 주무셔요. 조희양 동화작가



제일중학교 은사님께 올리는 편지

선생님! 삼가 인사 올립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모두가 어렵던 그 때, 저희들은 봄이면 온 들판을 붉게 물들였던 자운영 꽃밭에 누워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습니다.

여름날 오후, 무룡산과 돗질산을 쌍무지개가 다리를 놓으면 우리는 선녀가 꽃가마 타고 시집 가는 날이라면서 그 무지개를 잡으려고 대붓둑을 마냥 달렸습니다. 가을, 논이 금물결로 변할 때면 참새떼들을 쫓느라고 후여 후여를 외치다가 목이 쉬었습니다. 겨울이면 찬바람이 스치는 하늘을 뒤덮었던 수많은 오리떼들의 끼룩끼룩하는 울음소리에 우리는 동무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득한 옛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저와 제 친구들은 나이가 들었습니다. 또, 부족한 점 적지 않지만, 세상을 이해하고 후배를 이끌고 때로는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그런 위치에 서 있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항상 가슴 깊이 새겨온 덕분 아닌가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선 칭찬도 많이 하셨지만 꾸중도 자주 하셨습니다. 칭찬이나 꾸중 모두 저희들 잘 되라고, 올바른 생각하고 정당한 행동하라고, 그리고 열심히 생활하라고 그러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께선 존재 자체만으로도 저희들에게 너무나 큰 복이었고 힘이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선생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모든 사랑, 이제 후배들에게 돌리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고향, 조국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하겠습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이 너무 그립습니다.        최병국 국회의원



현대청운고등학교 강상철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고 계시죠. 스승의 날을 맞아 고등학교 시절 담임이셨던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강상철 선생님을 만났기에 제가 대학을 입학하고 또한 취업해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늘 아침에 누구보다도 먼저 학교에서 학생들을 맞이해 주셨고 또한 지각하는 학생들을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지각을 자주했던 저는 선생님이 너무 무섭고 가끔 미워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의 사랑의 매는 저에게 지각하지 않는 습관을 길러주게 하
신 것 같습니다.

가끔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하면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려주곤 하셨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언젠가 저도 선생님을 찾아 뵙고 인사 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선생님의 제자, 저희 선배들이 사회에 나가서 성공한 이야기들. 다들 각자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꿈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덧 제가 사회의 일원이 되었고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교시절 강상철 선생님을 만나서 좋은 추억들이 많았고 야단도 많이 맞았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이번 스승에 날에는 꼭 한번 찾아뵙고 그 동안 못다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조진혜 경남은행 울산영업추진부



1989년 하동 북평초등학교 김종남 선생님께

선생님, 수경이는 초등교사가 되었어요.

매섭던 추위가 지루하게 길어지더니 봄도 없이 바로 여름인가봐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하늘은 눈부시고 예쁜 꽃이 여기저기서 살랑거립니다. 사는 게 바쁘고 정신없다가도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며 큰 숨 한 번 쉬어봅니다.

5월15일, 스승의 날이 되면 책상 위엔 아이들의 감사편지와 꽃들로 감사를 받으면서도 정작 저의 스승이신 선생님께 연락 한번 못드린 게 너무 죄송스러워 오늘은 용기 내어 편지글을 띄웁니다.

선생님. 기억하시나요. 1989년 하동군 변두리 시골 북평초등학교에서 5·6학년 담임을 맡아 2년간 저희를 가르쳐 주셨고 소년체전에 내 보내기 위해 운동신경도 없는 저희들을 뽑아 배드민턴을 가르쳐 주셨던 그 때 그 시절을, 그리고 저 하수경을요.

선생님. 저 울산에서 초등교사로 발령받은지 10여년이 됐습니다. 매년 스승의 날이면 선생님 생각해요. 그리고 손을 꼽아봅니다. 20여년이 지났으니 지금쯤 연세가 얼마쯤 되셨겠지? 퇴직하셨을려나? 혹시 어디 편찮으신건 아니신가? 술을 엄청 좋아하셨는데….

인터넷을 뒤지고 전화다이얼 한번 돌리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조롱조롱 달린 애들 데리고 찾아뵐 형편도 안되는데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에 마음을 접길 해마다 반복하네요. 올해는 이 글을 기회로 꼭 한번 찾아볼까해요. 그리고 선생님께 자랑할까봐요. “선생님, 저는 제 꿈처럼 초등교사가 되었고,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열정을 쏟는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게요”라구요. 안녕히 계세요. 하수경 범서초등학교 교사



방어진중학교 서성화 교장선생님께

저의 결혼식 주례를 맡아주셨던 서성화 교장선생님.

사람의 얼굴은 마음을 담는 거울인가 봅니다. 양정중학교에서 처음 본 선생님의 인자한 모습은 제가 교사가 된 이후에도 빼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15살 철부지 학생이 벌써 한 집안의 가장으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지만 선생님의 인자하신 모습은 제
가슴 속에 그대로 남아 시간의 공백을 채웁니다. 군 제대 후 복직하게 된 화진중학교에서 선생님을 교감선생님으로 다시 뵙게 되었지요. 마치 자식처럼 반가워해 주시고 사소한 것들까지도 살펴주시던 선생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여전한 스승님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인생살이에는 연습이 없다. 순간순간 하루하루의 삶이 곧 인생살이다. 그러니 순간을 소홀히하지 말고 하루를 값지게, 참되게 살아라’라고 하신 말씀이 제 가슴에 깊이 박혔습니다.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고개 숙여 인사드리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나한테 고마워하지 마라. 자네의 희망대로 훌륭한 스승이 되어서, 제자들에게 내가 준 사랑의 몇 곱으로 베풀어라. 만약 자네가 나에게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은혜를 갚는 길이다.”

그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며 교직 생활을 하겠다고 다짐에 또 다짐을 했습니다.

자주 연락드리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바쁨을 핑계로 차일피일한 것이 죄송하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평생 어진 사도(師道)를 걸어오신 선생님의 모습을 언제나 마음에 품고 살겠습니다. 김지훈 효정고 교사



1982년 두동초등학교 2학년1반 장재문 선생님께

그리운 장재문 선생님께.

날마다 스승의 날이라야 하지만 마음은 잊기가 쉬운가 봅니다. 29년 전 산골마을의 작은 옹달샘에 갇혀 있던 샘물과도 같았던 우리들을 선생님의 열정과 크신 사랑, 올곧은 가르침이 강을 흘러 바닷가에 닿게 한 것 같습니다.

당시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쌀이며 학용품을 사주고 칭찬과 애정을 쏟던 그 모습이 아직 눈에 선 합니다. 또 아이들을 볼 때 단점 보다는 장점을 먼저 찾으려고 하셨고 꾸짖음보다는 칭찬과 찬사를 아
끼지 않으셨으며 일방적인 훈계보다는 아이들의 말을 더 많이 들어주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졸업 때도 선생님과의 헤어짐이 너무 아쉽고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또 뵙고 싶은 마음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반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을 찾아뵙고서야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고 항상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세상살이가 힘들거나 외로울 때 그 가르침과 사랑은 제 안에서 또렷한 울림으로 든든한 힘이 되곤 합니다.

너무 긴 시간이 흘러 선생님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셨는지 알 수 없지만 저의 마음엔 늘 젊은 선생님으로 남으셔서 꾸짖고 정을 쏟아 주시는 것 같아 더욱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은 어딘가에서 또 많은 아이들에게 꿈과 사랑을 나눠 주고 계시겠지요. 선생님…. 그 옅은 웃음 사이로 구수하게 흘러나오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  김종림 남구청 기획감사실



1978년 대현중학교 3학년8반 이형호 선생님께

선생님. 뒤늦게 인사 올립니다.

늘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가위처럼 마음 한 구석을 누르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저는 중학교 3학년 때쯤 정말 공부를 열심히했던 것 같습니다. 주야로 공부밖에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취업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때였고, 어머니는 공사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오남매의 밥벌이를 해야 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나의 공부를 챙겨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새벽이면 일어나 누나들이 자고 있는 방안에서 혼자 밥상을 펴놓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 저를 만든 것은 바로 3학년8반 담임이셨던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당시 수학을 담당하였는데, 희끗한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하나라도 더 가르쳐 보려고 노력하셨고, 가르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공부를 제법하는 제가 대견했는지, 모의고사를 치고 나면 교무실에 불러 점수가 몇 점 올라갔는지 검토해주시고, 지나가다가도 제가 보이면 “열심히 하고 있지”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너를 믿고 있다”는 말에 사로잡혀, 저는 공부를 게을리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입은 은혜로 치면, 매년 선생님을 찾아 뵈야 할 터이지만, 단지 중학교를 졸업한 후 몇 번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뿐입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지금은 정년퇴직을 하셨겠지만, 건강하게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하고 계시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정희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