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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자부심보다는 부족함을 이야기하자

소문과 다른 초라한 ‘부자도시’
성장 거듭하는 수도권과 비교돼
한계·위기 지적하는 목소리 필요

2010-08-02     경상일보
▲ 배명철 대표이사 사장
왜 이리 바뀐 것이 없지? 서울에서 생활하다 부산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본 도시의 첫 느낌이었다. 고등학교까지 다니면서 보아왔던 대신동과 초량동, 남포동의 모습은 새 건물이 일부 들어선 모습을 제외하고는 거의 그대로 였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왜 도시는 제대로 된 변화가 없었을까.

산복도로의 좁은 길을 버스가 허덕거리며 지나가는 모습. 60년대 영화세트장에서나 볼 법한 유치한 수준의 상점 간판. 검은 콜타르를 발라놓은 낡은 지붕. 퀘퀘한 냄새가 가시지 않는 부산역 광장의 어수선한 모습. 부산은 30년동안 거의 성장하지 않은 도시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해운대를 둘러보고는 많이 바뀌게 되었다. 세련된 간판과 정돈된 거리, 새 건물이 쑥쑥 올라가고 있는 풍경은 부산이 성장이 멈춘 낡은 도시라는 인상을 얼마간 줄여놓았다. 하지만 낡은 도시 부산에 대한 슬픈 인상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환상을 깨면서 연민과 안타까움, 때로는 분노마저 남겼다.

최근 부산에서 직장을 옮겨 울산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울산의 인상은 ‘소문과는 다른 도시’라는 것이다. ‘1등 부자도시’라는 소문과 달리 실제의 울산은 초라한 느낌마저 주는 도시였다. 환상과 소문을 쫓아 몰려든 건설업자들이 짓다만 건물들. 왕복 6차선 이상은 몇개 되지 않는 낮은 도로율. 디자인의 개념을 찾기 어려운 간판과 어수선한 거리풍경. 세련된 느낌을 주지 못하는 옷차림과 활기가 떨어진 시민들. 지역의 문제에 치열하고 논리적인 토론보다는 “지역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도시.

며칠 전 오랫만에 김포공항에 내려 서울 강남 거리를 지나면서 새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얼마동안 못 본 사이 강남의 거리는 여느 국제도시와 비교해도 위용 있으면서 잘 디자인된 도시의 모습이었다. 넓은 도로에 크고 깔끔한 건물, 예쁜 간판들, 세련된 시민들의 모습. ‘부자 도시’ 울산은 그에 비하면 ‘시골’이었다. 시골서 지내다가 진짜 제대로 된 국제도시에 왔다는 느낌. 오래동안 생활해온 곳인데도 서울이 왜 그리 경외스럽게 다가오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산업수도’라고도 표현되는 울산의 시민들은 울산에 대한 자부심이 유달리 높다는 인상을 주었다. 울산의 자부심을 내세우는 말을 종종 들었기 때문이다. 광역시 승격 13년만에 ‘산업수도’와 ‘환경도시’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은 데서 오는 당연한 자부심이다.

하지만 자부심이 넘쳐서일까? 최근 몇년동안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는 수도권에 비해 지방도시로서 ‘시골’이라는 인상마저 느끼게 하는 울산의 모자람을 걱정하는 말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모자람을 말하지 않으니 지방도시 울산의 한계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모자람을 말하지 않으니 고심하고 토론하는 모습도 찾기 어렵다. 굳이 세미나 자리가 아니라도 울산의 현안과 국가적 문제에 서슴없이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을 잘 보지 못한다. 지식인들의 토론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도시, 그 자체가 시골스러움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울산에 터를 잡고 울산을 쳐다보기 시작한지 3개월째. 울산의 겉모습만 보고 울산을 너무 쉽게 폄하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하지만 누군가 멈추어 선 울산을 다시 흔들어 깨우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울산의 자부심만을 이야기할 때 누군가가 울산의 모자람에 대해 지적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울산이 지방도시의 한계를 넘어 ‘세계속에 우뚝 선 국제도시’로 성장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달콤한 정치구호가 아니라 진정성을 갖추려면, 울산의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서슴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배명철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