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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라틴 아메리카]기억이 상실된 국가와 기억만 가진 나라의 경계 허물기

11.올드 그링고

2010-09-16     박철종 기자
▲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역사는 멕시코 혁명, 쿠바 혁명,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혁명 등 굵직굵직한 사건으로 가득하다. 루이스 푸엔소 감독의 ‘올드 그링고’(1989)는 멕시코 혁명을 다루는 영화이며, 해마다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멕시코의 소설가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발표한 동명의 소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링고’란 단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인이나 유럽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작품의 제목인 올드 그링고는 ‘악마의 사전’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앰브로스 비어스를 일컫는다. 실제로 비어스는 멕시코 혁명에 참가했지만 이후의 종적은 묘연하다. 푸엔테스의 작품은 죽음을 찾아 멕시코로 와서 돈키호테처럼 겁 없이 전쟁터를 누비던 비어스의 마지막 나날을 상상을 통해 서술하고 있고, 영화도 이런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레고리 펙과 제인 폰다 등의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하는 ‘올드 그링고’는 멕시코의 전설적인 영웅 판초 비야가 멕시코 혁명 전투를 벌이던 1913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자신의 전집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노령의 작가 비터(앰브로스 비어스)는 그곳에 참석한 작가들을 사이비라고 규정하고 신문사 사주는 돈과 권위만 찾는다고 비난하면서 그들과 작별한다.

한편 우연히 이런 모습을 지켜본 윈슬로는 깊은 감동을 받고,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멕시코 상류층인 미란다 가족의 가정교사로 취직하여 멕시코에 도착한다.

하지만 이미 멕시코는 혁명에 휩싸여 있었고, 미란다 가족은 혁명의 적으로 선포되어 있었다. 가옥이 폭파되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와중에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혁명군과 함께 하고, 거기서 혁명군 장군인 아로요와 그의 부대를 따라온 비터를 알게 된다. 한편 저택을 탈취한 아로요는 윈슬로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주인처럼 행세한다. 두 사람은 윈슬로를 차지하려고 애쓴다. 윈슬로는 아로요의 뜨거운 열정과 젊음에 매력을 느끼지만, 비터의 냉정하고 냉소적인 기지와 지혜에도 마음이 끌린다.

삼각관계에 빠진 아로요는 판초 비야의 진격 명령을 받고도 미란다의 저택에 남아 옛 토지문서를 찾아내 그 문서에 적힌 농부들의 권리를 지켜야한다는 핑계로 지체한다. 시간이 흐르고 부하들 사이에 불만과 불안이 팽배해지자, 비터는 아로요가 임무를 수행하도록 토지문서를 불태운다. 이것을 목격한 아로요는 분노를 참지 못해 그를 쏘아 죽인다.

윈슬로는 비터가 미국에서 종적을 감춘 앰브로스 비어스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녀는 그의 시신을 고국으로 옮기기 위해 미국영사관에 도움을 청한다. 한편 미국의 개입을 염려한 혁명군 판초 비야는 아로요를 명령 불복종으로 처형한다. 혁명군의 젊은 장군과 늙은 작가의 죽음을 목격한 해리엇은 두 사람을 기억하며 새로운 삶을 위해 멀리 떠난다.

이 영화는 미국이 ‘기억이 상실된 국가’이며 멕시코는 ‘기억만을 가지고 사는 나라’라는 정형화 된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미국인들의 정체성이 멕시코의 정체성과 어떻게 다른지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세 인물에게서 잘 드러난다. 윈슬로에게는 미국-쿠바 전쟁에 참여했던 아버지의 존재가 자리잡고 있고, 아로요에게는 어머니가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 즉, 멕시코는 어머니의 나라이며 미국은 아버지의 나라인 것이다. 또한 멕시코 사람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곳에 그대로 머물지만, 비터와 윈슬로로 대표되는 미국인들은 조국을 떠나 멕시코로 이동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거울 이미지를 통해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를 허물어 뜨린다. 아로요는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서 윈슬로와 춤을 추면서 자기 아버지의 아내와 춤을 춘다는 환상을 갖고, 비터에게서 자기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한편 윈슬로는 자기 아버지와 춤을 춘다고 상상하고,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비터와 아로요의 이미지와 뒤섞인다. 즉, 세 사람은 서로 뒤섞이면서, 미국과 멕시코의 고정된 이미지는 파괴된다.

‘올드 그링고’는 진정한 경계란 바로 우리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임을 보여주면서,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없애려고 한다. 서구의 문명은 그 어떤 바다나 산, 혹은 사막도 인간에게는 한계가 될 수 없음을 증명했지만, 유일하게 인간 지성의 발전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각자가 내면에서 만들어 두텁게 쌓아놓은 벽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벽이 바로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채 그들과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다.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