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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터치]남성들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영화

(10)무적자

2010-09-27     박철종 기자
추석 연휴가 지나갔다. 추석 때가 되면 여러 가지가 생각나겠지만 어린 시절 음식들에 대한 기억을 빠뜨릴 수가 없다. 그 중에서도 지금도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음식들은 집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들 보다는 진한 색소로 범벅이 된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팔던 불량식품들이다.

이런 기억이 무의식 속에서 흐르기 때문일까? 추석에 선택하는 영화는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음식과 같은 감동적인 영화 보다는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던 어린 시절 불량식품 같은 자극적이거나, 가벼운 영화들이다.

영화 ‘무적자’는 필자의 젊은 시절 하나의 코드로 남아있는 ‘영웅본색’의 리메이크 작품이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어린 시절 불량식품을 고르는 것과 같은 호기심도 무적자라는 영화를 선택하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모든 것을 잊고 신나게 즐기고 싶은 것이 추석 연휴 아닌가?

리메이크 영화의 숙명이 있다. 전편을 기본으로 연출하기 때문에 흥행과 이야기 전개는 안정적이지만 항상 전편과 비교 당해야 되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영웅본색’과 같이 한 시대 조류를 이끌었던 영화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부담감 때문인지 감독은 ‘영웅본색’의 화려한 액션과 비주얼 대신 우리나라 현실이 된 탈북자 형제의 갈등을 이야기 중심에 둔다.

굳이 ‘영웅본색’과 무적자를 비교하고 싶지 않다. 이야기 전개가 미숙하고 지금 보면 촌스럽지만, 웃고 있지만 울고 있는 주윤발의 눈망울, 아름답기도 하고 슬픈 느낌마저 드는 액션 신, 감동적인 OST…. 이런 것들은 ‘영웅본색’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감독도 이런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원작과는 다른 영화를 만들려고 했고 결과적으로 이런 것들에 의하여 영화가 끝으로 갈수록 힘을 잃게 된다. 차라리 원작에 충실하여 비주얼 쪽에 비중을 두고 영화를 만들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탈북자 친형제 간의 갈등, 그리고 같은 탈북자로 친형제는 아니지만 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의형제간의 의리 등 복잡한 심리상태와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어려움을 액션으로 포장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눈과 입을 즐겁게 해 주는 불량식품도, 몸에 좋은 건강 식품도 아닌 어정쩡한 영화가 되어 버렸다.

이런 문제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배우들의 연기는 칭찬해 주고 싶다. 부드러운 이미지의 송승헌은 거친 남자의 냄새가 났고, 동생의 등을 보고 국밥을 입에 집어넣는 주진모의 표정 연기와 형에 대한 복수심에 이글거리는 김강우의 야수 같은 눈빛도 기억에 남는다.
▲ 노승현 신장내과 전문의

또한 교활한 배신자로 나오는 조한선은 그가 단순히 얼굴만 반반한 배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실감나는 연기를 한다. 적어도 남성들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영화라는 호평은 가능할 것 같다. 옆에 앉아서 영화를 본 젊은 아가씨들이 영화 말미, 주인공이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보고 훌쩍거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긴 죽기엔 너무 멋있는 남자 배우들이 아닌가?

하지만, 아무런 희망 없던 80년대, A better tomorrow라는 부제로 우리의 감성을 자극했던 원작의 감동은 생각보다는 너무 강렬했다. 영화 장면, 장면마다 생각 나는 원작의 장면과 대사들로 정작 영화 자체에는 몰입할 수 없었다. 영화 관람을 마치고 ‘영웅본색’ DVD를 다시 꺼내본 사람이 필자 하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원작, ‘영웅본색’을 다시 보고 싶게 하고 그립게 했던 리메이크 영화, 무적자였다.



노승현 신장내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