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영화로 보는 라틴 아메리카]야만적 문명과 문명적 야만의 조화 통해 환경의 중요성 각인

13. 연애소설 읽는 노인

2010-09-30     박철종 기자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인 롤프 드 히어 감독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라틴아메리카의 대표 작가인 루이스 세풀베다가 1989년에 발표한 같은 제목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인간과 자연의 균형과 조화를 강조하면서, 아마존 밀림의 파괴로 인해 인간과 아마존의 동식물뿐만 아니라 인간성도 파괴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래 이 작품은 ‘장미의 이름’과 ‘연인’ 등으로 유명한 장 자크 아르노 감독이 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영화들 때문에 제작이 늦어져 저작권이 만료되자, 롤프 드 히어가 저작권을 넘겨받아 영화를 제작했다. 2001년에 개봉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DVD로 출시된 이 영화는 주인공이자 노인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가 40년 동안 아마존 밀림에 있는 ‘엘 이딜리오’라는 마을의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아내가 죽은 후부터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연애소설을 읽는다. 안토니오는 그곳의 원주민인 슈아르 족에게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지낸다. 그런데 어느 날 미국인이 표범에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러자 권력층을 대표하는 읍장은 안토니오에게 표범을 찾아낼 것을 지시한다.

안토니오는 표범 사냥에 동참하지만, 백인 사냥꾼이 표범 새끼들을 죽였기 때문에 암표범이 사람을 잡아먹는 맹수로 돌변하여 복수한 것임을 직감한다. 이윽고 표범 사냥이 시작되고 영화는 백인과 슈아르 원주민의 상이한 생각을 드러낸다.

슈아르 족은 표범 고기는 먹을 수 없고 짐승 가죽은 평생 동안 장식품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표범을 사냥하지 않는다. 그들은 필요한 것 이상으로는 살상을 하지 않으며, 동물을 죽여야만 한다면 그 동물이 최소한의 고통만 느끼게 해야 하고, 사랑의 기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반면에 읍장과 미국 사냥꾼들은 움직이는 모든 것에게 총을 쏘고, 타인의 고통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말 것이며, 가능한 한 많은 여자들을 정복하는 걸 자신들의 법칙으로 삼는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표범 사냥을 떠난 안토니오는 카누 아래 숨어 있다가 총을 쏘고, 자기 발과 표범의 발에 상처를 입힌다. 이후 슈아르 족과 지냈던 시절이 회상되면서, 슈아르 족의 방식으로 죽이는 것과 백인들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누에서 나오면서 그는 백인들의 무기인 총을 강에 던져버리고는 슈아르 족의 방식대로 독침을 만든다. 그리고 독침을 넣은 대롱을 사용해 정정당당하게 표범을 죽이고서 강물에 그 시체를 떠내려 보낸다.이렇게 그는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백인의 비겁함과 경제적 탐욕으로 야기된 모든 것을 저주한다. 영화는 그가 오두막으로 돌아와 자기 그물침대에서 읍장의 애인이며 하녀인 호세피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 그녀에게 연애소설을 읽어주는 것으로 끝난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인간과 암표범의 대결을 통해 인간의 약탈행위가 야생동물을 말살하고 환경을 교란시킬 지경에 이르렀음을 고발한다. 그리고 싸움의 승패를 떠나 대지와 대지의 모든 생명체는 소중하다는 진리를 간결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또한 이 작품은 ‘야만적 문명’과 ‘문명적 야만’을 대립시키면서 야만적인 문명을 비판하지만, 문명적인 야만을 무조건 옹호하지는 않는다. 즉, 서양적 관점과 슈아르 족의 지혜를 통합하면서, 인간이란 우주의 수많은 구성요소 중의 하나이며, 인간은 모든 동식물과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것은 노인 안토니오가 연애소설을 읽는 의미와도 관련이 있다. 연애소설은 서양의 문학 장르이다. 이 영화는 해설자의 목소리를 통해 “마침내 그 연인들은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간절히 붙잡고 꽉 껴안고 있었다. 그들의 손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고 그들의 입술은 불타고 있었다”라는 연애소설의 한 대목을 읽어준다. 이것은 바로 서양의 가치와 슈아르 족의 지혜를 서로 인정하는 주인공 안토니오를 통해 두 문화의 조화와 사랑만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다는 시각을 키스라는 개념을 통해 제시한다.
▲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라틴아메리카에서 환경 문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정복 초기부터 서양의 인본주의 이데올로기가 강제로 이식되면서, 서양과 다른 세계관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침묵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라틴아메리카의 자연자원은 착취되었고, 이것은 라틴아메리카 토착문화의 파괴로 이어지면서 환경약탈을 가속화시켰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면서 라틴아메리카는 서구의 인본주의 사상을 거부하면서 새로운 관점을 찾기 시작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다양성을 탐험한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기존의 체계적이고 권위적인 서양 담론이 아마존이란 무대에서는 부적절함을 밝히면서, 서양의 관점이 보편타당하게 모든 곳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