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영화로 보는 라틴 아메리카]여자 청부암살자가 보여주는 마약밀매와 콜롬비아의 현실

15. 로사리오

2010-10-14     박철종 기자
최근 들어 한국과 콜롬비아의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이 임박했다는 소리가 들리면서, 콜롬비아의 문학과 문화에 관해서도 관심이 커져가는 것 같다. 영화 ‘로사리오’는 콜롬비아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이후 최고 판매부수를 기록한 호르헤 프랑코의 소설 <로사리오 티헤라스>에 바탕을 두고 제작되었으며, 1990년대 이후의 콜롬비아 문화를 잘 보여준다.





‘로사리오 티헤라스’라는 제목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로사리오는 콜롬비아의 수호성모이며, 티헤라스는 가위를 의미하는데, 이런 이름은 이 영화의 주요 주제인 성(聖)과 성(性)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로사리오 티헤라스는 가위로 자신을 성폭행한 의붓아버지를 응징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여기서 ‘가위’가 그녀의 성(姓)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녀의 이름 자체가 아버지 없는 국가의 역사라는 것을 상징한다. 그것은 또한 폭력으로 점철된 콜롬비아의 역사이기도 하다.

‘로사리오’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마약 카르텔이 지배하던 콜롬비아 제2의 도시인 메데인을 무대로 삼고 있다. 이곳에서는 가장 연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방탕과 매춘, 그리고 마약의 세계로 빠지면서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주인공 로사리오는 마약 카르텔에 속해 있으며 비정하기 짝이 없는 여자 청부 암살자이다. 영화는 로사리오가 피범벅 되어 병원으로 실려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순간부터 플래시백을 통해 어떻게 로사리오가 그 순간에 이르게 되었는지 들려주면서 그녀가 살아왔던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그녀의 삶은 가난과 버림으로 가득하다. 창녀 어머니는 자기 딸을 계부에게 주어 그녀의 육체를 탐하도록 하고, 이후 그녀는 적의와 증오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다가 디스코텍에서 그녀 인생의 두 개의 불빛이 될 에밀리오와 안토니오를 만난다. 상류계급의 플레이보이인 에밀리오는 로사리오에게 반한다. 로사리오는 창녀의 신분으로 그를 만나고, 에밀리오가 자기를 존중해 주는 이상적인 애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소심한 젊은이인 안토니오는 그녀를 쫓아다니고 그녀를 원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그를 좋고 친한 친구로, 즉 착하다는 이유로 고통을 겪는 자기 자신과 유사한 사람으로 여긴다.

‘로사리오’는 콜롬비아 마약조직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로사리오의 오빠인 조네페가 살해된 장면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조네페가 죽자, 로사리오와 그녀의 친구들은 시체를 가지고 메데인의 거리로 나와 디스코텍으로 가서 술을 진창 마시고서 그를 공동묘지에 매장한다. 또한 이 작품은 종교성과 죽음의 춤을 통해 메데인의 하류층에 속하는 청부 암살자들의 문화를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마약세계 역시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뉜다는 것도 드러낸다. 여기서 지배층은 마약 밀매로 생긴 이익을 향유하는 층이며, 피지배자들은 사법당국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로사리오’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청부 암살자들이 치르는 의식과 종교와의 관계이다. 가령 성모 숭배와 총탄에 축복을 내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성인 메달과 신부들이 어깨에 걸치는 띠를 보호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로사리오의 오빠인 조네페가 성인 메달을 걸고 다니지 않다가 살해되는 것에서, 청부 암살자들이 종교를 어떤 목적으로 숭앙하는 것인지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이 영화에서 로사리오는 죽는다. 그녀의 죽음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그의 공포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과 일치한다. 메데인 마약 카르텔의 두목인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1993년 12월에 살해된다. 그러자 콜롬비아의
▲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어느 시사 주간지는 현대 콜롬비아 역사를 이렇게 요약한다. “파블로 에스코바르 이전에 콜롬비아 사람들은 청부암살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다. 전에는 세상 사람들이 콜롬비아를 커피의 땅으로 알았다. 파블로 에스코바르 때문에 콜롬비아에는 방탄차가 생겼고, 안전의 필요성 때문에 건축도 변화되었다.”

청부 암살과 마약 밀매라는 정치사회적 현상은 이제 콜롬비아에서 어느 정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콜롬비아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그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된다. 모든 걸 단기간에 결정해야 하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과시하거나 빛내지 않으려면 부자가 될 이유도 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허세의 문화로 발전된다. 그것은 감정의 문화이며 과도한 시각적 세계이자 멜로드라마 같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도덕이며, 죄를 용서하지만 그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면서 복수하는 신앙심이다. 이런 청부암살의 문화는 콜롬비아라는 지리적 경계에서 벗어나 전 세계로 확장될 수 있으며, 우리에게 소비주의 지향적인 삶과 문화를 되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