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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라틴 아메리카]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사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진실

16. 오피셜 스토리

2010-10-21     박철종 기자
루이스 푸엔소 감독의 ‘오피셜 스토리’(1985년)는 아르헨티나의 군부정권이 자행한 대규모 인권탄압 사태와 그 후유증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민간정부가 수립된 직후, 즉 군사정부에 대한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는 시점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그 영향력도 매우 컸다. 한마디로 ‘오피셜 스토리’는 전 세계에 라틴아메리카 군사정부의 인권유린을 고발하는 화제작이었다.





‘오피셜 스토리’에서 제시되고 있는 정치·사회적 상황은 매우 다층적이고 복잡하다. 그러나 로베르토를 통해 군사정부의 폭력성을 보여주며, 입양아 가비를 통해서는 군사정부의 피해자, 알리시아를 통해서는 진실을 알아가는 아르헨티나 사회를 보여준다.

쿠데타로 집권한 비델라 장군은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좌익 테러를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반정부 세력과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되는 수많은 시민들을 체포하여 고문한다. 이것이 바로 ‘더러운 전쟁’이다. 영화 제목 ‘오피셜 스토리’는 여기서 ‘공식 역사’를 의미한다. 이는 군부정권이 ‘더러운 전쟁’ 기간에 날조한 공식 역사와는 달리 진정한 진실은 ‘비공식 역사’에 담겨 있음을 은연중에 시사한다.

고등학교 역사교사인 알리시아는 학생들이 공식 역사가 아니라 그저 떠도는 얘기들을 역사적 사실로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진 인물이다. 불임이었던 알리시아는 어느 부부 동반 모임에서 입양한 딸 ‘가비’가 태어난 날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난감해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동창회에서 대학 시절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가 돌아온 친구를 만난다. 그녀는 알리시아에게 자기가 군사정부로부터 고문을 받았으며, 실종자들이 출산한 수많은 아이들이 친부모의 동의없이 강제 입양되었다고 말해 준다.

알리시아는 ‘가비’의 출생에 관해 남편에게 묻지만, 남편은 알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자 가비의 출생과 입양에 대해 알기 위해 몇 가지의 단서들을 가지고 아이의 친모가 누군지 찾으러 다닌다. 마침내 그녀는 ‘오월광장 어머니회’의 일원으로 시위를 하던 한 여성이 가비의 할머니일 수 있으며, 가비의 친부모가 실종자들임을 알게 된다. 알리시아는 자신도 군사정부가 행한 인권유린에 무의식적으로 가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 속에서 가비는 ‘기억나지 않는 나라에서’라는 동요를 부른다. “기억나지 않는 나라에서 세 발자국 갔더니 길을 잃었죠. 한 발짝은 이쪽으로 디뎠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한 발짝은 저쪽으로 디뎠어요, 아이 무서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죠. 벌써, 벌써 다른 발은 어디로 디뎠는지 잊어버렸기 때문이죠.”

이 노래가사는 낯선 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마치 가비와 알리시아, 그리고 ‘더러운 전쟁’에서 실종된 사람들과 그 자녀들의 불안한 앞날을 알려주는 것 같다. 실제로 군사정부는 이 시기에 많은 좌익정치범으로 몰린 젊은 여성들을 출산 후 살해하였고, 태어난 아기들은 군 장교들의 가정으로 마치 전리품처럼 넘겨졌다.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은 칠레 피노체트 정권과 함께 군사정부가 저지른 대표적인 인권탄압을 보여준다. 당시 고문 등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자는 거의 3만여 명에 이른다. 아르헨티나 군부는 영국과 말비나스(포클랜드)전쟁을 벌이고 이 전쟁에서 패배한다. 그러자 1983년 선거를 통해 민간정부 정권을 이양한다. 민간정부 수립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더러운 전쟁’ 기간 동안 고문과 탄압을 자행한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은 중요한 이슈였지만,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고 있다.

이 영화에서 ‘오월 광장의 어머니회’는 아르헨티나의 민주화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중요한 단체다. 오월 광장은 아르헨티나의 독립혁명이 시작된 곳이다. 또한 대통령궁의 발코니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이라, 대통령이 국민들을 직접 대면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아르헨티나 역사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곳이다.

평화를 가져다 주는 흰 비둘기를 상징하는 흰 스카프를 쓴 ‘오월광장의 어머니들’은 군사정권에 의해 체포되어 구금되거나 실종된 자녀와 손자들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선 여성들이다. 이들은 2006년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에 30분간 오월광장에서 실종된 가족을 찾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다. 과거청산 문제가 어느 정도 진척을 보이자, 2006년 이후에는 커다란 사회적 이슈들을 가지고 평화시위를 벌인다. 현재까지 이들의 노력으로 되찾은 아기의 수는 현재 100여명에 달한다.

아르헨티나 군사정부의 과거청산 과정은 지난해 10월 책임자들에게 전원 종신형을 선고함으로써 어느 정도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마무리는 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30대로 성장했을 입양된 실종자의 자녀문제는 상당기간 동안 해결할 과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순주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