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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A to Z]배려와 돌봄의 가치를 품는 도시문화

9. Humanity, 도시가 꾸는 꿈

2010-10-26     박철종 기자
▲ 도시의 보도는 그 도시가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에게 가지는 배려와 애정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이다.
휴머니티 도시는 상대적인가치속에서 우리 아이들의가치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결정하는 도시여야 한다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소설가 주제 드 소자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살아온 도시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가 시각을 잃게 된다는 비극단인 상황을 통해 일상적으로 누려온 것에 대한 소중한 가치들, 선과 악, 소유, 욕망 등을 불편하게 마주하게 하면서도 그 속에서 휴머니티 회복과 희망에 대한 단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름이 없는 등장인물들로 꾸려지는 소설 속에서 극단적인 인간의 추악함과 같은 휴머니티의 붕괴도, 서로를 이끌고 의지하며 삶의 의지를 지속하게 되는 휴머니티의 복구도 모두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눈먼 자’ ‘보는 자’ 등의 상대적인 의미 안에서 드러난다.
▲ ‘눈먼자들의 도시’ 포스터. ‘시각상실’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도시 속 휴머니티 회복과 희망에 대한 단서를 찾게 한다.


도시에서 일어난 극단적인 사건을 그리고 있는 우리 영화 ‘해운대’와 ‘괴물’ 역시 우리 일상의 터전인 도시에서 자연재해와 괴물의 등장이라는 비현실적 사실 앞에서 인간의 모든 욕망과 본성 속에서 드러나는 ‘휴머니티=인간애’의 본질과 만나게 된다는 공통적인 화두를 던진다.

어쩌면 쓰나미와 괴물 모두 결국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 욕망, 도시민들의 탐욕의 사생아라는 점에서 유사성을 감지해 볼 수 있다.

그 둘은 영화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을 선사하지만 결국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주인공은 인간 속에 담긴 고요한 깨달음일 것이다.

영화를 통해 열어본 이번 글의 주제는 ‘Humanity(휴머니티)’다. 십만, 백만,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 다양한 계층의 일상이 중첩되는 도시가 그 밀도 만큼이나 상대적이고 복잡하다보니 도시에서 ‘공통선’이나 ‘공통의 가치’를 언급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 되어왔다. 인간존중의 생각이 지나쳐 개인의 이익을 권리처럼 존중하다 보면 어느 누구의 손해로 이어져 갈등과 반목의 사건들이 그치지 않는 것도 도시이다.

그러나 21세기 도시들에서 다시금 휴머니티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위한 배려와 돌봄의 가치를 품는 도시문화가 개개인의 금전적 이익의 총합보다 훨씬 더 가치로울 수 있다는, 긴 세월 도시공동체가 겪어온 깨달음이 아닐까 한다.

▲ 남구 도시디자인 가이드라인 중 ‘커뮤티니 거리’ 이미지. 담장을 없애고 건물의 외부공간을 인접건물의 외부공간과 통합하면 차로부터 안전하고 만남이 이루어지는 ‘평화로운’ 공간과 골목길이 만들어진다.
오늘은 주제를 보도 이야기를 통해 풀어보려 한다. 도시에서 가깝게는 매일매일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보도는 어쩌면 그 도시가 인간의 기본권리와 안전에 대해 최우선으로 배려하고 있는지의 수준을 가늠하는 장소가 되며 도시민 스스로의 인본적 가치에 대한 잣대가 되기도 한다.

어느 도시를 걷다 편안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도시가 그들의 거주자들을 최우선적으로 아끼고 있다는 그 마음이 읽혀진다면 그 도시는 정말 성공한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도시의 가장 느린 약자에 맞추어 설계된 신호와 교통체계, 그들을 배려하는 안전한 보도의 디자인, 보행자들이 머물 수 있는 외부 공간들, 눈높이에 맞추어 설계된 도시의 연속적인 저층부 풍경, 누가 보더라도 알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정확한 이정표와 사인체계들…마음까지 건강해지는 연속된 자연물 등이 그 단서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도시는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아직까지 우리는 아이들이 집 밖에 나간 순간부터 들어올 시간까지 가슴 졸이며 도시의 각종 ‘장애물’을 극복하고 ‘운’좋게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그 극단에 놓인 대표적인 장소가 어쩌면 우리 아이들의 통학로인 ‘스쿨존(School Zone)’일 것이다. 아이들이 6년, 길게는 12년을 다니게 되는 ‘학교가는 길’은 단지 습관적으로 오가는 통로가 아니라, 그들이 생애 최초로, 그리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매일매일 도시와 만나는 장소이며 인간에 대한 가치와 존엄, 타자에 대한 배려를 배우는 신뢰의 장소, 창의성을 키워나가야 하는 감각의 모태가 될 수도 있는 다차원적 공간이다.
▲ 1945년 원폭 투하 당시의 비극을 그대로 보여주는 히로시마 원폭 돔. 전쟁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휴머니티 말살의 최악의 사례이다.


나는 충분히 중요한 존재이고 도시는 나를 충분히 보호하고 있다고 믿는, 따뜻하고 존중받는 느낌은 인간존재로 성숙해가면서 키워가야 할 행복감과 존엄성, 그리고 나아가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애착과도 관련이 있다.

여러 도시에서 스쿨존의 문제점을 시정하고 지정방식이나 안정성, 환경조성 등에 대해서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는 현실이지만 아직 형식적인 선에서 머물고 있는 듯 보인다.

필자는 21세기 스쿨존은 도시가 인간에게 특히 나약하고 힘없는 인간에게 어떠한 배려심을 갖는지의 잣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도시에는 해결해야 할 일도, 돈이 들어갈 일도 많다. 대규모 토목공사도 해야 하고, 공장도 지어야하고, 강과 바다도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고 하루하루 이 도시 속에서 커간다.

휴머니티의 도시는 이런 상대적인 가치 속에서 우리아이들의 가치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결정하는 도시여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고민을 조금했으면 한다. 지속 가능한 시대, 인본주의의 기준과 생태적인 판단 하에서 중용이라는 것이 어쩌면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음을, 칭찬과 우려가 공존하는 다른 도시의 사례를 통해 접하게 된다.

특히 후손에게 물려줄 천혜의 생태환경과 도시가 공존하는 울산이라는 도시에서 우리가 현재 내리고 있는 선택들은 진정한 휴머니티에 기반해 있는가를 고민하면 좋겠다. 멋진 풍경과 자연을 알고 싶고, 가고 싶고, 걷고 싶고, 보고 싶다는 인간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생태계에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고 있지는 않은지 대왕암공원을 방문하고 나서 느낀, 자연에게 약간은 미안하고 씁쓸한 감정이었다. 울산의 어느 영역은 보이되 갈 수 없고 느끼되 정확히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둘 수는 없는 걸까.
▲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역설적이게도 자연과 공존하는 휴머니티와, 무수한 욕망과 상대적 가치의 총체인 도시는 인간문명의 역사 속에서 평행선을 달려 왔는지도 모른다. 혹은 어쩌면 휴머니티는 도시가 꾸는 영원한 꿈일지도 모르겠다…그 속에서 많은 이들이 함께 꾸고 있는….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는 않는 눈 먼 사람들이라는 거죠…(중략)…그녀는 쓰레기로 가득 찬 거리,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 부르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이어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내 차례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눈길을 얼른 아래로 돌렸다.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주제 사라마구, <눈먼자들의 도시> 중에서.

◆ humanity n.
① U 인류.
② U 인간성, 인도; (pl.) 인간의 속성, 인간다움.
③ U 인간애, 박애, 자애, 인정.
④ (보통 pl.) 자선 행위.
⑤ (the humanities) (그리스·라틴의) 고전 문학; 인문학(철학·문학 등).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의 본질·본성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