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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라틴 아메리카]독재정권 탄압 맞서 자유를 노래한 미라발 자매들

21. 도미니카의 붉은 장미

2010-11-25     이재명 기자
11월25일부터 12월10일까지는 세계 여성폭력추방 주간이다. 특히 25일은 카리브 해의 조그만 섬나라인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체제에 저항하다가 살해된 세 미라발 자매들을 추모하여 선포된 세계 여성폭력추방의 날이다. 2002년에 국내에 출시된 마리아노 바로소 감독의 ‘도미니카의 붉은 장미’는 바로 미라발 자매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20세기 도미니카 공화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라파엘 트루히요’와 ‘나비들’이다. 라파엘 트루히요는 1930년부터 1961년까지 도미니카를 통치한 독재자이며, 그의 독재정권은 탐욕과 철저한 통제,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야만적 행위로 규정된다. 반면에 ‘나비들’은 목숨을 건 용감한 저항과 희생의 상징이다. 그래서 독재자 트루히요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게는 커다란 두 명의 적이 있다. 하나는 교회이고 다른 하는 미라발 자매들이다.”

미국으로 망명한 도미니카의 작가 훌리아 알바레스의 소설 ‘나비들의 시절’을 각색한 이 영화는 자유를 위해 투쟁한 진정한 영웅이자 ‘나비들’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세 미라발 자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 세 자매의 이름은 미네르바, 마리아 테레사, 파트리아이다. 미라발 자매들은 유복한 가정 출신으로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이후 세 자매는 도시에 있는 수녀 학교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독재자의 방탕한 성욕이 나이나 사회계급을 불문하고 마수를 뻗치고 있음을 알면서, 처음으로 트루히요 독재의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독재자 트루히요는 댄스파티에서 아름답고 똑똑한 미네르바를 보자, 서슴지 않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독재자가 애무하자, 미네르바는 그의 뺨을 때린다. 그러자 그는 그녀의 아버지를 체포하여 고문하면서 복수한다. 한편 미네르바는 자기 가족에게 탄압을 일삼는 독재자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지하조직에 참여하여 전단을 인쇄하고 무기를 배급한다. 이후 마리아 테레사와 파트리아가 가세하면서 그들은 지하조직에서 ‘나비들’로 알려진다. 세 자매, 특히 미네르바는 트루히요 체제의 감시를 받고 여러 번 체포되어 고문을 받지만, 자기 아이들과 국민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면서 몸을 아끼지 않고 반 트루히요 투쟁에 헌신한다. 1960년 11월25일, 감옥에 갇힌 남편들을 만나고 돌아오던 이들은 트루히요의 비밀경찰에 의해 사탕수수 농장으로 끌려가 무참히 살해된다.

이 영화는 여기에서 끝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는 그들의 죽음이 일으킨 반향이 더욱 중요하다. 세 자매를 죽이면서 독재자 트루히요는 커다란 골칫거리를 해결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독재자가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서곡이었다. 미라발 자매들의 죽음은 도미니카 공화국 전역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국민들은 여성들을 무차별 살해한 독재정권의 잔인함을 깨닫는다. 도미니카 국민들은 미라발 자매들의 이상을 갈수록 지지하면서 의식화되고, 결국 1961년 5월 30일에 독재자는 암살되고 31년에 걸친 독재는 마감된다.

‘도미니카의 붉은 장미’는 ‘나비들’의 개인적 삶과 그들이 겪는 고통과 고문에 치중하고 있기에, 도미니카의 정치적·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이런 점에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대표작인 ‘염소의 축제’는 이 영화와 함께 읽으면 아주 좋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트루히요의 독재가 그곳 국민들에게 어떤 후유증을 남겼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미라발 자매의 죽음에 얽힌 여러 상황을 자세히 들려준다.

이 소설은 그들의 죽음이 얼마나 커다란 파급효과를 지녔는지 이렇게 말한다.

“도미니카 공화국 전체가 아주 신속하고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방법으로 이 살해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은 입에서 입으로, 집에서 집으로 전해졌고, 몇 시간도 안 되어 그 나라에서 가장 멀리
▲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떨어진 지역에까지 도착했다.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실리지 않았지만, 종종 이 뉴스처럼 사람의 소리를 통해 전해진 소식은 윤색되어 축소되거나 과장되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실제 일어난 일과 완전히 다른 신화나 전설이 되곤 했다.”

이렇게 신화나 전설이 된 미라발 자매는 억압받는 민중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면서, 매년 11월25일 세계인에게 기억된다. 그들의 죽음은 단지 독재체제에 대한 반항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거부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이제 그들은 트루히요가 자신을 기리기 위해 산토도밍고에 세웠던 거대한 오벨리스크에 ‘자유의 노래’라는 제목의 벽화로 그려져 있으면서, 오늘날의 세대에게 여성과 독재 정권 아래의 국민들이 처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고, 자유와 정의를 향한 노래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