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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A to Z]감성도시, 인터페이스가 좌우한다

10.인터페이스,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010-12-07     이재명 기자
◆ interface
n. 중간면, 접촉면 【물리】계면(界面), (상호)작용을 미치는 영역, 상호 작용(전달)의 수단
【컴퓨터】사이틀, 인터페이스(CPU와 단말 장치와의 연결 부분을 이루는 회로).
vt. …을 (…에) 잇다, (순조롭게) 조화(협력)시키다, 【컴퓨터】(…와) 사이틀(인터페이스)로 접속하다(with, to).

건물의 출입구나 입면이 사람과 도시가 만나는 인터페이스가 되며, 그 개별적 인터페이스들이 모여 도시의 풍경을 만든다

파리에서의 일이다.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소나기가 내린다. 서둘러 가게에 뛰어들어 우산 하나 사들고 나올 때까지 음식 정도나 들여갈 뿐, 그곳에 필자같이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천천히 비가 그칠 때까지 웃으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 공간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떤 문화적 속도나 깊이를 가진 것일까 궁금해졌다. 사실 필자의 도시답사 목적의 반 이상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 우리 전통건축은 크고 작은 인터페이스 공간의 총체이다. 채와 채의 공간을 나누면서도 연결시키는 마당, 칸과 칸의 중간영역이자 마당과의 접점이 되는 대청,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형성하는 처마와 툇마루 등 공간에서 공간으로 전환하는 풍부한 공간들이 우리 공간의 과정지향적인 정체성을 만든다.

사진제공 유명희


오늘의 이야기는 도시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도시, 사람과 건축, 건축과 건축 등을 매개하는 ‘인터페이스 공간’에 관한 것이다. ‘인터페이스(Interface)’는 사전적으로 두 시스템을 연결하는 중간면, 접촉면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용자의 의도를 디지털 환경에서 시각화해주는 키보드나 마우스 등의 접속매체의 의미로 더욱 익숙하게 쓰여왔다. 컴퓨터 화면에서 보이는 폴더나 바로가기, 아이콘 또한 인터페이스라고 할 수 있고, 최근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스마트폰은 그 자체가 다층적 인터페이스의 결정체일 것이다. 패션계에서는 옷이 인간과 세계를 매개해주는 인터페이스라고 하고, 광고계에서는 타이포그래피와 이미지를 감각과 의미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라고 하는 등 각 전문분야에서는 그 분야의 핵심적인 매체들을 인터페이스라고 칭해 왔으나 최근 분야간 통섭의 현상들은 그간 분화되어 존재했던 핵심 인터페이스 개념들이 서로 만나 재편되는 재미있는 과정을 동반한다.

▲ 오사카 신사이바시 아케이드 내부 건축물 전면공간들은 전면 전체를 개방하거나 거리에서 바로 2층으로 진입하는 계단요소를 시각화시키는 등 매우 극적인 인터페이스로 진화한다. 아직 아케이드 따로, 건물 따로인 울산의 아케이드 거리의 활성화를 위해 참작할 만하다. 사진제공 유명희
인터페이스를 공간적으로 생각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바로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다. 앨리스가 빠져서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던 나무구멍이야말로 현실과 이상한 세계와 연결해 주는 공간적 인터페이스였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매이션 ‘토토로’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또 어떤가? 자동차가 수직벽면을 타고 올라가 고층에 위치한 집에 바로 주차하는 모습은 전혀 새로운 도시 인터페이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건축분야에 있어서는 어떤 것을 인터페이스라고 할 수 있을까? 건축도면은 도면을 읽으면서 머릿속 가상세계에서 3차원적 공간의 모습을 그려야 하는 2차원의 인터페이스이다. 최근 3D, 나아가 홀로그램으로 보여주는 입체적 그래픽은 그 가상 공간을 더욱 사실에 근접하게 보여주는 인터페이스일 것이다.

실제 환경에서는 어떨까. 전등 스위치는 밝게 하고 싶다는 의지와 밝은 방이라는 현실 사이를 손동작으로부터 전기적으로 번역해 장치를 연결해 주는 아주 간단한 인터페이스다. 그리고 우리가 ‘개구부’라고 통칭하는 문이나 창들은 이 공간과 저 공간을 연결하는 가장 간단한 인터페이스이다. 이 인터페이스를 통과하면서 우리는 이 계(界)에서 저 계(界)로 시간적, 공간적으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전통건축은 인터페이스가 깊이를 가지면서 공간으로 분화되는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마당과 대청, 처마와 툇마루라는 내외부 공간의 매개공간 뿐 아니라 건물에 부여된 ‘채’와 ‘간(間)’이라는 개념자체도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 의미를 가진다. 전통적 공간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은 아마도 이 지점에서 출발하게 될 것이다.
▲ 스티븐 홀(Steven Holl)이 설계한 뉴욕의 스토어프론트(1982). 공간의 기본적인 인터페이스 장치인 ‘문’과 ‘개구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프로젝트로, 사용자의 의도와 상황에 따라서 문은 창으로, 창은 가로에 면한 프론트 등으로 계속 의미가 변형된다. 사진제공 위키피디아 영문판


연결의 의미는 더욱 분화하여 다리(bridge)와 같은 인터페이스 공간 자체로 분화하기도 한다. 더 큰 스케일로 확대해보면 도시공간에 있어서는 건물자체가 인터페이스의 역할을 수행한다. 풍경과 풍경을 이어주고 내륙과 해안을 열어주는 통경축의 개념에서 보면 그런 거시적 역할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필자는 살아있는 도시공간은 이러한 인터페이스 공간이 풍부하게 분화되어 있음을 본다. 건물 하나하나의 출입구나 입면이 바로 사람과 도시가 만나는 인터페이스가 되며, 그 개별적 인터페이스들이 모여 도시공간의 연속적 풍경을 만들게 된다. 만일 거리의 건물 하나하나가 내향적이고 자족적이라면 그 거리는 도시공간에 매우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 정반대의 사례도 있다. 이른바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역공간;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을 역전시킴)’라는 개념으로, 상업적인 의도에서 공적인 공간을 사적으로 점유하거나 사적인 공간을 마치 공적인 의미인 양 군중들에게 제공하지만 실상은 폐쇄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는 백화점의 아트리움 공간 등이 그 예이다. 커뮤니티성이 다시 강조되는 현대도시에서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자. 건물의 입면은 도시 내부와 외부의 경계면으로서 인터페이스 공간으로 확장된다. 투명한 입면은 내부공간의 상황과 사람들의 움직임, 욕망, 상업적 의도 등을 그대로 반영하는 장치가 되고, 특정한 재료와 입면 패턴을 통해 내외부의 풍경을 편집하기도 한다. 나아가 최근 등장한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는 만들어진 동적인 이미지들을 도시공간으로 투사한다. 지속 가능성과 생태환경을 생각해야 하는 21세기 건축의 입면은 여기에 환경적 필터링의 역할까지 더해지면서 다층화하고 있다.

아케이드 이야기로 마무리를 해본다. 물리적·시각적으로 분화된 대표적인 도시 인터페이스는 바로 아케이드가 아닐까. 일찍이 발터 벤야민의 ‘도시산책자’의 개념이 탄생한 것도 유럽의 반 외부공간인 파사쥬(passage)-아케이드(arcade)의 등장에 기인한다.

비와 바람을 피하면서도 내부의 폐쇄성을 벗어나 도시성을 느릿느릿 즐감할 수 있는 아케이드의 성공적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은 것 같다. 비교적 성공적 사례로 꼽히는 오사카 신사이바시의 아케이드는 가지각색으로 진화한 건물들의 인터페이스 공간들을 만나는 즐거움 덕분에 그 긴 거리가 지루할 틈이 없다. 2층, 3층까지 아케이드공간에 면해있는 전면부는 문이 없이 건물 전체가 개폐되는 셔터형식으로 되어 있어 머뭇거림 없이 건물 안으로 접근하는 것은 보통이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들은 다양한 디자인으로 전면에 배치되어 바로 2층으로 접근하기 쉽도록 되어있으면서도 수평적으로 단조로울 수 있는 아케이드 거리의 수직적 조형요소 역할까지를 담당한다. 건물의 로비공간은 이처럼 분화되어 깊이를 가진다.

이에 비해 울산의 아케이드는 접근이 쉬운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아직까지 건물따로 아케이드 따로 무심하고 폐쇄적인 모습이다. 더구나 아케이드 내외부의 3층 부분은 거의 비어있는 듯 퇴락
▲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이 심각하다. 임대 면적에 연연하던 생각을 바꾸어 바깥에서 바로 2층, 3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계단이나 로비 등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인터페이스를 고안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재미있고 걷고 싶은 거리가 되어 건물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가리라 기대된다.

그런 시각에서 어제까지 중구문화원에서 열렸던 울산대학 건축학전공 4학년 학생들의 ‘감성도시’전에 다녀오면서 이 프로젝트는 우리 구도심 거리를 활기차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도시 인터페이스를 모색하는 참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했다. 백년쯤 뒤 우리의 도시가 영화 ‘배트맨’의 고담시티나 ‘제 5원소’ 같은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