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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루]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2011-03-17     이재명 기자
▲ 이궁로 시인
강변 산책길은 탄성재질로 포장한 길로 제법 넓다. 평소엔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어느 날 그 길의 가운데가 주변보다 색이 엷어진 것이 눈에 띄었다. 그 흔적은 비뚤비뚤 굽어 있었지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길게 뻗어 있었다. 처음엔 비온 뒤 끝이라 오염된 것이 씻긴 것인가 했는데 가만히 길을 따라가다 보니 그 흔적은 사람들이 밟고 다녀서 생긴 새로운 길의 형태였던 것이다.

길이 아무리 넓거나 좁아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이 한결 같은 것은, 사는 방식이 서로 다른 것 같아도 삶을 추구하는 방향은 다 같은 모양이다. 모두 같은 곳을 밟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그 길을 걸으면서 내 주변 친구들을 떠올렸다.

언제나 삶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M은 얼마 전 몸에 이상이 있어 세 번에 걸쳐 수술을 했다. 그러함에도 M은 자신의 아픔을 과장하거나 엄살을 부리지도 않았다. 언제나 밝고 유쾌하다. 그런 M을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유쾌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M은 요즘 공부를 하고 있다. M은 그것으로 자신이 뭐가 되겠다는 욕심보다 자신이 가지게 될 능력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욕심이 생겼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일고 그로 인해 괴로워했다. 애초에 다짐했던 사회봉사와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려던 마음이 자꾸 희석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심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를 한다고 한다. M이 평소에도 주변의 어려운 이웃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관심과 실천을 지켜본 나로서는 M의 눈물의 기도를 이해한다.

또 다른 친구 L은 귀여운 여인이다. L과 교우하면서 한 번도 그가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그렇다고 L 자신의 의견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항상 우선적으로 타인을 배려한다. L은 요즘 치매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 어린아이로 퇴행해 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L은 괴롭지만 그 모든 것을 감내한다. 아버지가 가끔 용변을 처리하는 것도 잊을 때면 그 뒤처리도 해야 하지만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라고 말한다.

L은 그러한 아버지를 돌보게 된 것이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한다. 그것은 삶에 대해 교만해지던 자신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면서 자신의 삶을 반성한다. 자신의 그러한 자세는 L자신의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로서 본보기가 될 것이라며, 요즘 효에 대한 본질이 점점 희석되어가고 있는 세태에서 자신이라도 지키고 싶다는 것이다.

D는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게으름을 부리지 않는다. 늘 솔선수범하며 언제나 부지런하고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D의 친정어머니는 중풍으로 오래 동안 고생하고 있다. 시골엔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만 생활하고 있으며, 음식을 하기 어려운 어머니를 대신하여 D는 한 달에 두 번씩 각종 음식을 해서 택배로 부친다. 그러면서도 귀찮아하는 내색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D는 말한다. 그래도 자신이 부모님께 이렇게라도 해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고. 자신이 그렇게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냐면서, D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산다면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요즘은 세상이 유리로 되어있는 것처럼 안이나 바깥이나 투명하여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아도 한 겹만 열고 들어가면 미무에 갇힌 미궁이 나타나고, 그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미노타우로스 같은 괴물과 마주칠 것 같은 두려움을 안고 살기도 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많은 시련과 난관에 부딪치고 또 그것을 극복하면서 살아간다.

이렇듯 다르지만 또 닮은 듯 긍정과 배려와 사랑을 미덕으로 삼고 살아가는 친구들의 삶을 태도를 보면서 나는 가끔 옹졸해지고 각박해지는 나를 뒤돌아본다. 그것은 삶에 충실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궁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