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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루]디시페이트와 서푼앓이

2011-03-24     이재명 기자
▲ 박장희 시인
사회심리학 용어에 ‘디시페이트(dissipate)’라는 게 있다. 팽배해 있는 불만을 분출시키는 돌파구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가정적 불만이 팽배했을 때 사건이나 분쟁을 일으키는 행위 등을 디시페이트라 한다.

신학기가 되면 아직 친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학교에서 가끔 자신의 위상 제압이나 도난 사건의 디시페이트가 일어난다. 진학 스트레스의 현상인지. 현실에 대한 불만인지. 물질만능의 현상인지. 애정결핍의 현상인지. 신체는 성인인데 성인대접을 유예당하고 있는데 대한 것 등 여러 가지 현상의 디시페이트가 일어난다.

우리 학창시절엔 책이나 학용품 또는 체육복 정도였고, 현금 도난 사건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주로 현금 도난 사건이라 한다.

내가 중학교 1학년 시절 기억에 남는 디시페이트가 하나 있다. 반 학우가 학교 육성회비 3500원을 몽땅 잃어버렸다고 울면서 안달을 했다. 그 도난 사건은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운 학우가 회비를 못 내 궁여지책으로 짜낸 발상이었다. 입학 당시 등록금이 없어 입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시 6학년 담임선생님께서 등록금을 대신 내어주시면서 앞으로는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으로 다니라고 격려해 주셔서 입학했다. 하지만 영양실조에다 집안가사와 농사일로 몸이 지쳐 공부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후 담임선생님께서 교장선생님과 서무과의 의논을 거쳐 그 학우는 3년 동안 회비를 면제 받아 무사히 졸업했다. 그녀는 버스 차장 등 여러가지 일을 하며 동생 둘을 대학까지 공부시켜 의사와 사법시험에도 합격시키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자신은 뒤늦게 동생들의 수입으로 고등학교 검정고시와 K국립대학교를 졸업했다.

얼마 전 어느 고등학교에서 현금 도난사건으로 학부형이 고난을 치렀다. 한 학생이 용돈을 잃어버렸다며 책상과 의자를 발로 차며 “내 돈 가져간 XXX 걸리면 죽여 버린다”는 등 갖은 욕설과 협박을 해서 반 전체 아이들이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그에 반발한 학생 10여 명은 그 돈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데 우리 모두를 도둑으로 모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라며 손 좀 봤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돈 잃고 매 맞은 그의 어머니께서 교장선생님께 진단서를 제출해 가해자들 학부형이 호출당한 것이었다.

돈 잃고 화가 나서 공포를 조성한 학생도 문제지만 집단 폭력을 한 것도 잘못이다. 요즘 10대들은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이나 저주하는 말같은 욕설을 마치 재미를 더하는 추임새 정도로 쓰고 있는 듯하다. 학교에서 도난·폭력·폭언·기물파손 등이 문제시되는 것은 기계문명으로 인해 모두가 바쁜 일상에 지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연과 함께 친화하며 사랑하고 보듬어줄 에너지와 시간이 부족해 물질과 돈으로라도 대신 보상하다 보니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피해자 어머니께서는 교장선생님과 여러 학부형님을 뵙자고 한 것은 잃어버린 돈과 치료비를 요구해서가 절대 아니라고 했다. 앞으로 도난 방지와 왕따·폭력 등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예방차원이라고 했다.

사람은 10년에 한 번씩 세포가 바뀐다고 한다. 특히 뇌세포의 형성과정에서 이목구비의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외계의 충격은 뇌세포에 프린트되어 그 사람의 지성·감성·성격을 형성시키며 어떻게든지 영향을 미친다.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집을 옮긴 것도 모두 어린 자식의 지·덕·체 뇌세포 프린팅을 걱정해서다.

우리나라에도 법도를 잇는 가문에서는 ‘서푼앓이’로 참아야 한다는 동자훈(童子訓)이 있었다. 아이에게 밥을 줄 때도 열 푼에서 서 푼을 모자라게 먹이고, 옷을 입히고 잠을 재울 때도 열 푼에서 서 푼을 부족하게 춥게 입히고 재우라는 교훈이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서 푼을 덜하려면 마음의 아픔이 수반되는 ‘서푼앓이’다. 옛 어머니들은 충족보다 모자란 것이 있어야 한다는 인생의 교훈을 뇌세포에 프린팅했던 것이다.

요즘 10대나 성인들이 상식을 초월한 충동적인 사건이나 범죄 등의 디시페이트를 밥 먹듯 저지른 데는 배금주의 사상과 물질만능주의로 부모와 사회의 무관심속에서 ‘서푼앓이’의 뇌세포 프린팅이 방관되어 왔기 때문은 아닐까?

박장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