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태화루]빨래하는 남자

2011-03-31     홍영진 기자
▲ 이종대 시인·울산중앙여고 교사
그 남자는 주말이면 빨래를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말이 되면 혼자 빨래를 한다. 아내의 일손을 돕기 위해서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세탁기도 사용하지 않고 그 많은 빨래를 직접 손으로 하는 것을 보면 무슨 사연이 있음에 틀림없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그는 작심한 듯 손발을 걷어 부치고 방에서 나와 먼저 화장실 욕조에 수돗물을 틀어 놓는다. 물에 세정제를 적당히 풀고 그 다음엔 일주일 동안 묵혀 놓은 빨랫감을 빨래 바구니에서 끄집어 내어 색깔별로 나눈다. 희고 밝은 색 계통의 빨랫감을 먼저 욕조에 담그고 검고 어두운 빨랫감은 따로 골라 나중에 담근다. 삶아야 될 빨래는 어쩔 수 없어 따로 모아 아내에게 맡긴다.

욕조에 물이 어느 정도 차면 고무 장갑을 낀 손으로 빨래를 한다. 욕조에 손을 집어 넣어 뭉치고 꼬인 옷들을 가지런히 편 후 빨랫감을 이리저리 흔들기도 하고 비비기도 하면서 빨래를 한다. 빨래가 많아 손으로 쥐어 짜기가 힘들 때는 아예 욕조에 들어가 두 발로 꽉꽉 밟으며 빨래를 한다. 세정제로도 때가 잘 벗겨지지 않는 옷들은 따로 끄집어 내어 빨래판에 놓고 빨랫비누로 다시 빤다.

빨래가 모두 끝나면 하나하나 손으로 쥐어 짜서 세숫대야에 담근 후 베란다에 나가 빨랫줄에 다시 하나하나 널어 놓는다. 속옷이나 양말 같은 작은 빨래는 빨래건조대에 널고 나머지 큰 빨래는 빨랫줄에 펼쳐 널어 놓는다.

그가 왜 이렇게 정성을 들여 빨래를 하는지 처음에 나는 잘 몰랐다. 세탁기로 돌리면 금방 할 수 있는 일을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직접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 전 어떤 모임에서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들려 주었다. 객지에서 대학을 다닐 때도 빨래를 했고, 군대에 있을 때에도 물론 빨래를 했으며, 제대를 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자취를 할 때도 빨래를 직접 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빨래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잠시 맛보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다시 빨래를 하고 싶더라고 했다.

노래를 부르면서 빨래를 하고, 잡념을 씻기 위해 빨래를 하고, 아픈 허리를 고치기 위해 빨래를 한다는 것이다. 빨래를 직접 하기 위해서는 손아귀에 힘이 있어야 하고, 몸을 숙이고 빨래를 놓았다 들었다 하기 위해서는 허리가 튼튼해야 하며, 빨래를 발로 꼭꼭 밟기 위해서는 다리도 튼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빨래를 통해서 자신의 건강을 확인하고 싶고, 빨래를 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찾고 싶다는 것이다. 덩달아 아내의 가사일도 도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냐며 그는 껄껄 웃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빨래를 하기 싫어한다. 특히 결혼한 남성들이라면 빨래를 더욱 하기 싫어한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지만 심지어 빨래하기 싫어서 결혼한다는 웃지 못할 남자들도 있다.

벌써 4월이다. 봄의 전령사인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 며칠 지나면 진달래도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빨래를 좋아하고 빨래를 즐기는 그 남자, 내 이웃에 사는 그 남자는 어김없이 빨래를 할 것이다. 손발을 걷어 부치고 빨래 바구니에 담긴 빨래를 물에 넣고 직접 빨 것이다. 다 빤 빨래는 모아 볕 바른 베란다 빨랫줄에 널어 놓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햇볕에 익은 파삭파삭한 빨래를 눅눅하기 전에 아마 직접 걷을 것이다.

이렇게 따뜻한 봄 날, 우리네 몸도 마음도 걷어야 할 때 걷을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게으름으로 어제 걷지 못했다면 더 늦지 않은 오늘 걷어 구김 가지 않게 잘 접어 서랍 속에 넣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해인 수녀님이 쓰신 시 ‘빨래를 하십시오’처럼 비누가 부서지며 풍기는 향기를 맡으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빨래를 하십시오 / 이해인



우울한 날은 / 빨래를 하십시오

맑은 날이 / 소리내며 튕겨 울리는

노래를 들으면 / 마음이 밝아진답니다



애인이 그리운 날은 / 빨래를 하십시오

물 속에 흔들리는 / 그의 얼굴이

자꾸만 웃을 거예요



기도하기 힘든 날은 / 빨래를 하십시오

몇 차례 빨래를 헹구어내는

기다림의 순간을 사랑하다 보면

저절로 기도가 된답니다



누구를 용서하기 힘든 날은 / 빨래를 하십시오

비누가 부서지며 풍기는 / 향기를 맡으며

마음은 문득 넓어지고 / 그래서 행복할 거예요







이종대 시인·울산중앙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