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도시탐험 A to Z]도심의 다양한 높낮이(layer) 유기적 연결 고민해야

13. Layer, 도시통합체의 비밀
생명력 있는 오래된 도시일수록
layer들은 각기 다른 시간층을
담으며 더욱 깊고 풍성해진다
각각의 층위들은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들며 조화를 이룬다

2011-04-06     이재명 기자
*layer
① 층(層), 켜, (지질)단층.
② (한 번) 바르기, 칠하기.
③ 놓는(쌓는, 까는)사람, 계획자

새 건축관을 짓고 처음 맞는 봄, 건축사 사무소 ‘협동원’의 이민아 소장이 특강차 방문했다. 필자가 맡고 있는 4학년 설계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도시집합주거 사례연구의 일환으로 강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 부산 건어물시장, 시장을 갈 때 우리는 간판을 일일이 보지않고 점포앞 물건을 본다. 다양한 물건들과 행위들이 중첩된 이 공간의 켜(layer)는 보도생활의 활력을 준다.
. 협동원은 최근 서울 강남지구 보금자리주택 A-4 블록 디자인 공모안에 당선돼 도시주거에 관한 고민들을 많이 한 바 있다. 도시집합주택의 개념에 관한 고민, 주거를 소유할 수 없는 저소득층을 위한 소규모 공공주택에 대한 고민, 함께 거주한다는 경험에 관한 고민 등등. 그의 고민은 우리나라 집합주택 역사 40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온 인동간격과 주향, 그리고 최대효율이라는 원칙으로 인해 만들어져 온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 건물과 극도로 단절된 외부공간의 무심함에 가 닿는다.

당선안의 개념은 흥미롭다. 주동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가늘게 만든 ㄱ자, ㅡ자 주거 유니트 하나와 그를 사방으로 둘러싼 외부공간을 통째로 한 단위로 삼고, 그를 3차원 퍼즐처럼 중첩시켜 전체 단지를 형성하는 개념이다. 유니트와 외부공간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부·외부 공간이 한 세트인 ‘거주 경험의 통합체’를 만드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거주자들끼리의 만남은 다차원적으로 이어지고 단지 곳곳에 분산된 공용 프로그램을 공유하면서 ‘내 집 한 채’의 경험을 하게 된다.

유니트, 주동, 배치라는 각각의 분리된 체계가 아닌, 유니트와 유니트간의 접점, 유니트와 주동간의 접점, 주동과 도시가 만나는 층층이 확대되는 접점공간 자체를 설계했다는 것이 당선안의 설계개념이다.

▲ 동경 록본기 힐즈의 저층 외부공간의 성층화, 휴먼스케일로 양파껍질처럼 나누어진 저층부 동선들이 서로 내려다볼 수 있도록 어긋나 있다.
설명을 듣다보니 필자가 존경하는 네덜란드 건축가 하브라켄(N. J. Habraken)의 ‘통일체’ 개념과 만난다. 하브라켄은 ‘칸막이’ ‘건물’ ‘도로’ ‘간선도로’ 등 도시를 이루는 층들을 물리적 실체로 구분한 우리의 통상적인 방식이 도시를 삭막하게 하고 인간과 건조환경을 분리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두 단계 사이의 공간을 ‘장소’ ‘방’ ‘건조공간’ ‘블록’ ‘이웃’ 등의 개념으로 연결하는 통합체로 도시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 주제로 삼은 키워드, 도시의 ‘layer’는 러시안 인형같이 성층화된 도시통합체의 각 단계들을 연결하는 접촉면이자 개인 경험이 도시차원으로 단계별로 확대되는 단서이며, 풍성한 도시경험의 레시피가 된다. 생명력 있는 오래된 도시일수록 이러한 도시의 layer들은 각기 다른 시간층을 담으며 더욱 깊고 풍성해 진다. 각각의 층위들은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들고 서로 관입한다. 그런 도시를 탐험하며 양파처럼 하나하나 layer의 비밀을 읽어가는 경험은 꿀맛같다.

개인의 경험이 건물과 만나는 대표적 layer는 바로 ‘보도’이다. 도시생활의 생명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보도의 연결이라는 점은 필자가 누누이 강조해 왔던 것을 독자여러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보도는 건물의 내부생활자와의 묘한 관계를 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밖과 안의 차원을 연결하는 공간과 연결되면 건물의 인터페이스로서의 기능까지 담당하게 된다. 보도 쪽으로 놓여진 카페테리아의 외부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도 도시를 풍성하게 하는 layer가 되는 것이다.
▲ 동경 오모테산도 거리의 버버리(Burberry) 매장의 2층 반외부공간. 보도의 외부공간이 적극적으로 2층으로 옮겨져 후면의 마을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건물을 관통하여 바로 오모테산도 거리로 내려갈 수 있다. 오밀조밀한 뒷 마을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신다.


재래시장의 경우 layer는 더욱 재밌게 깊어진다. 재래시장에서는 누구나 간판보다는 점포 앞에 놓여진 일련의 물건들을 보고 그 점포가 뭘 파는 곳인지를 알 수 있다. 주인은 안 쪽 보다는 바깥 공간에 머물고 물건을 사고 파는 행위는 일상적으로 이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재래시장이 쇼핑몰과 다른 이유와 가치가 여기에 있다. 재래시장의 전면공간은 지저분하다고 없앨 공간이 아니라 각종 물건들과 보행자, 상인간의 상호관계가 중첩되어 펼쳐지는 도시의 보석 같은 장소이다.

한편 도시는 수직화되면서 고층부는 사적공간화 되고 시선과 보도체험에서 단절되면서 수평적인 도시보다는 더욱 도시경험의 연결성이 떨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입체적인 성층화 작업이 필요한데, 필자는 보도의 layer공간을 깊고 길게 펼쳐 레벨을 다층화시켜 연속적인 경험을 되도록 깊고 높게 끌어올리자고 제안한다. 선큰, 지면층, 2층, 3층까지 연결되는 동선을 만들고 이를 반외부, 반내부화시켜 건물로 직접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도시의 외부공간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고층빌딩들로 구성된 도쿄 록본기힐즈의 저층부 공간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보행자의 접근에 성공한 사례이다. 더욱 적극적인 사례를 이로재 승효상 소장의 작품 ‘휴테크 빌리지’에서 보았다. 서로 만나기 어려운 고층 업무공간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외부의 공간층을 건물 안쪽으로 깊게 끌어다 중앙에 수직 정원을 만들었다. 마치 주머니를 뒤집은 것 같은 공간이다. 다층의 정원들과 보행자 브릿지들을 통해서 예기치 않은 만남이 이루어지는 도시공간의 경험은 건물의 옥상으로까지 이어진다.

현대건축가들은 이러한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현대도시에서 단절된 개인과 공공과의 적
▲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극적인 대면경험을 늘리는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최근까지 위계적으로만 다루어졌던 사적, 준사적, 준공적, 공적 공간이라는 의미적, 사회학적 layer들은 때로는 분화, 통합, 역전되기도 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관계를 만들고 다채로운 도시경험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오래된 도시 울산도 잠재적 가치, 시간의 층위, 사람의 다양한 차이들을 드러내는 풍성한 layer를 지닌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더 큰 맥락을 고려하여 설계하라. 의자는 방에 있고, 방은 집에 있으며, 집은 마을에 있고, 마을은 도시계획 안에 있다.” -엘리엘 사아리넨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