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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루]도서관 가는 길

2011-05-05     이재명 기자
▲ 김시민 시인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의 도서관이었다” 빌 게이츠의 말이다. 도서관, 이 말 한마디만 들어도 우리의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형언할 수 없는 의미로움이 각 자의 가슴마다 수놓여져 있는 공간이며 꿈을 키운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이 있는 공간은 사람들을 젖 먹여 키웠고 그 젖을 먹고 자란 사람들이 각 자의 세상을 열고 미래를 가꾼 특별한 의미로 자리잡아 왔다. 빌 게이츠 역시 어린 시절 그의 할머니와 함께 다닌 동네 도서관에서 먹었던 책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음을 단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나에게 있어 도서관은 매우 특별한 공간이다. 나는 십여 년 전부터 울산에 있는 각 도서관에 학부모를 위한 어린이 독서 및 글쓰기 교육을 위해 평생교육에 출강했다. 새 학기가 될 때마다 어린이 책에 대한 궁금증과 아이 교육을 위한 어머니들의 열기가 강의실을 가득 채운다. 진지한 얼굴들과의 만남, 나를 들뜨게 했다. 단 하나라도 더 익히고 배우려는 그들의 눈빛을 대할 때마다 나의 책임감도 또한 더 깊었다.

하지만 늘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것은 도서관이 집에서 너무 멀어 이용에 불편하거나, 장서의 부족으로 읽으려는 책이 부족하거나 독서 정보 제공이 깊지 않다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도서관 인프라의 부족이 이용자의 불편으로 다가와 독서 환경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어린이 책을 수서하고 검색하여 아이들이 읽으면 좋은 책을 엄선하여 도서관을 꾸몄다. 비록 사무실 한 켠에 만든 작은 도서관이었지만 가슴이 뿌듯했다. ‘작은 책방’이라 이름도 붙였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어린이 책 작가, 엘리너 파전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 ‘작은 책방 이야기’를 읽고 그렇게 이름지었다. 그의 작은 책방 이야기가 우리 도시의 아이들 가슴에 다가가길 꿈꾸었다.

하지만 진정한 나의 꿈은 또 다른 것이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만든 ‘작은 책방’이라는 도서관이 없어지는 꿈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동네마다 지역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긴다면 내가 운영하는 도서관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조금만 걸어가면 동네 도서관이 있고, 그곳이 동네 놀이터인양 책과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만나길 나는 꿈꾸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는 작은 학교 도서관이 있었다. 허름한 교실 한 칸에 책들이 꽂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면 그 교실에 들어가 재미있는 책 한권을 뽑아 든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어느덧 저녁 햇살이 길게 누워 내 이마에 햇살이 발을 뻗치면 나는 또 한권의 책을 빌려 집으로 온다. 그렇게 옛 이야기를 읽으며 도깨비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순신 장군이나 김유신과 같은 영웅의 서사를 읽으며 장군이 되는 나를 상상해 보기도 했다.

몇 권의 책이 있었는지 쉽게 셀 수 있을 만큼 작은 학교 도서관이었지만 학교 가까이 집이 있었던 나는 어떻게 보면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신작로 하나를 건너면 우리 집이었기에 도서관은 쉽게 찾는 놀이터였다. 읽을거리가 없었던 그때, 단지 얼마 되지도 않는 독서가 오늘날의 나를 있게 했다.

오늘도 나는 도서관을 간다.

읽고 싶은 책을 책상머리에 쌓아두고 웃음 짓는 아이들을 본다. 진지한 얼굴이다. 가끔은 웃음기를 매단다. 책이 열어주는 마법의 세계에 빠진 게 분명하다. 서가를 둘러본다. 서가에 있는 책들이 손짓한다. 그 책을 열어 본다. 옛 풍경이다. 소중한 삶의 기억들이다. 또 다른 책을 열어 본다. 지혜롭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책은 속 마음을 다 드러내놓고 나보다도 더 감사해 한다.

이렇게 도서관은 우리와 소통하고 싶어 몸부림친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친구들을 오늘도 부르고 있다. 책이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 내 발길은 자연스레 도서관을 향한다.

오늘도 나는 도서관을 간다. 지난번에 빌려 온 책의 향기를 가슴에 채우고, 오늘은 무슨 책과 만날까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정돈된 서가에서 나는 책의 향기를 들이키며 곱게 정리된 그 속에서 일하는 분들의 고운 손길도 느낀다. 도서관,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우리 삶의 촉매제로 존재하고 있다.

나는 더 많은 바람에 사로잡힌다. 모내기 철, 이 들판 저 들판에 물을 끌어 들여 어린 모를 심듯, 이 동네 저 동네 도서관을 서로 앞다퉈 지어 훌륭하게 가꾼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 그리고 그 모가 지혜롭게 자라 자랑스러워하며 말 하는것을 듣고 싶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울산에 있는 우리 동네의 도서관이었다”

김시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