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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루]버스에서 생긴 일

2011-06-15     이재명 기자
▲ 이궁로 시인
벌써 유월이다. 유월의 바람은 초록빛이다. 도처에서 펄럭이는 나뭇잎 사이로 초록빛이 찬연하다. 길가에 그림자조차도 초록빛으로 보인다. 여름이 온 것이다. 여름을 맞이한 느낌이 갑작스러운 것은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점점 계절적 감각이 둔해지는 것 같다. 나뭇잎은 갑자기 무성해 진 것이 아닌데, 무심하게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계절 감각도 둔감해지는 것일 게다. 여름은 더위와 함께 참을성을 시험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때로 그 참을성이란 것이 긍정의 힘을 주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그 시험대에 서도 좋으리라.



나는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며칠 전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좌석버스를 타게 되었다. 내가 버스를 탔을 때 비어 있는 좌석은 몇 좌석 없었다. 그때 비교적 앞쪽에 젊은 여성 옆 좌석이 비어 있어 앉으려니 그녀는 곧 탈 사람이 있으니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불쾌했지만 뒤에 좌석이 남아있어 뒤로 가 앉았다.

그러나 곧 탄다던 그녀의 일행은 몇 정거장을 가도 나타나지 않았고 정류장에서 사람이 탈 때 마다 그녀는 사람들을 앉지 못하게 했고 그때 마다 사람들은 불쾌감을 내비쳤다. 급기야 그녀는 승객들의 항의를 받게 되었다. 노부부가 타서 몸이 불편한 부인을 앉히려 했는데도 그녀는 안 된다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빈 좌석을 두고도 그녀의 완강함에 아무도 앉지를 못했다. 그녀의 뻔뻔함에 더 이상 아무도 어쩌지 못했다. 모두들 참고 있었다. 보다 못한 그녀의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가씨가 일어나 노부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며 주변 승객들의 얼굴이 안도의 빛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는 것 같다. 그동안 지하철이나 대학에서 철없는 젊은 여성들의 행동이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그날 버스에서 본 젊은 여성의 행동 또한 혀를 찰 일이었다. 점점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해졌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해지는 세대의 모습은 결국 기성세대인 우리 자신들의 모습일 것이다. 철없는 젊은 여성을 탓하기 전에 우리 어른들이 제대로 가르치고 이끌어 왔는지 생각해 볼 때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지난여름 친정에서 시내버스를 탔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의 시내버스는 골짜기에 숨은 오지까지 가서 사람들을 태우고 시내로 들어온다. 나는 오전에 시내를 나가려고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는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혼란을 겪었다. 버스에 오르자 버스 안의 사람들은 모두 노인들뿐이었던 것이다.

이 버스가 저승으로 가는 버스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때 느꼈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었다.

시내버스는 어느새 시내 입구에 도달했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 운전기사가 없어졌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의아했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 만에 운전기사가 숨을 몰아쉬며 돌아와 어떤 할머니에게 거스름돈을 돌려주고 있었다. 운전기사의 행동을 유심히 보니 그 할머니가 버스를 타고 만원을 내자 잔돈이 없었던 기사는 자신이 직접 차에서 내려 슈퍼마켓까지 뛰어 가서 잔돈을 바꿔 거스름돈을 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할머니는 버스기사의 행동이 당연하다는 듯이 잔돈을 받아 자리에 가서 앉았고 버스 기사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버스 시동을 걸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가슴이 따듯해지며 엷은 미소가 입가를 지나갔다.



시내버스의 운전기사와 자리를 양보한 아가씨의 행동은, 아직은 우리 사회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더 많은 사회라는 것을 말해주는 흐뭇한 광경이었다. 그 두 사람의 행동은 참 아름다웠다. 그들의 행동은 아주 사소했지만 그들로 인해 주변이 밝아졌으므로 그것은 아주 큰 일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뭐든 크고 힘든 것에서만 의미를 찾으려하지만 이런 작은 배려야말로 밝고 긍정적인 사회를 만드는 힘이 되리라.

이궁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