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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루]향수의 여운

2011-06-22     이재명 기자
▲ 박장희 시인
향수의 멋은 은은한 여운을 남기는데 있다. 그런데 때론 엘리베이터 안이나 좁은 실내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향내가 지나칠 정도로 후각을 자극하여 역겨울 때가 가끔 있다. 향수는 마치 자신의 체취가 배어 나오는 것 같이 알 듯 모를 듯 풍길 정도로 사용하면 자기의 개성과 분위기를 환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향수를 사용하기 전에는 몸과 의상 기타 모든 것이 청결해야 한다. 간혹 세발을 하지 않거나 땀 냄새나 음식 냄새가 난다고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 향수를 뿌리면 오히려 역한 냄새로 변하여 향수로서의 기능을 다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품위를 그만큼 떨어뜨리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향수는 알코올에 대한 비율에 따라 나뉜다. 그 중에서 15~25%의 향료를 가장 많이 함유한 제품이 퍼퓸(perfume)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체로 사용하는 향수는 향이 강렬한 퍼퓸이 아닌, 향료의 6~10%를 알코올에 첨가시킨 오데 뚜알렛(Eau de toilette)이나 그 보다 농도가 낮은 오데 코롱(Eau de cologne)이다. 따라서 맥박이 뛰는 곳이나 열이 많은 곳에 뿌리면 단 시간 만에 그 향이 달아나버린다.

향수는 주로 귀 뒷부분이나 목덜미·손목 안쪽·머리카락 또는 맥박이 뛰는 곳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남성일 경우는 넥타이 뒤쪽이나 소매 안쪽, 재킷이나 점퍼 안쪽에 뿌려 움직임이 있을 때 살짝살짝 향이 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여성일 경우는 스커트 밑단이나 복사뼈 부근, 아킬레스건 안쪽으로 스타킹이나 양말을 신기전에 사용하게 되면 걸을 때마다 은은한 향기의 여운을 남길 수 있다.

향수 콜렉터(collector)라 지칭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지만 향수에 대한 관심만은 누구 못지않다며 ‘향수병 안의 추억’이란 글을 발표한 20대 후반의 새댁이 생각난다. 그녀가 대학 다닐 때 아버지께서 선물해 주신 ‘니나리찌’ 향수의 시작에서부터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샤넬 NO 19’ ‘이사이 미야케로’ 크리스천 디오르의 ‘DUNE’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위해 겔랑이 만든 ‘삼사라’를 거쳐, ‘샤넬 NO 5’ 등의 향수를 즐겨 사용하며 자기 내실을 열심히 가꾸는 그녀다. 그런 그녀가 직장을 가지게 되어서 문학 수업을 더 이상 나올 수 없어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짧게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후 그녀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나는 그 때 마침 외출 준비 중이라 차 한 잔만 했을 뿐 얘기도 제대로 못 나누고 안타까이 헤어졌다. 그날 밤 문득, ‘샤넬 NO 5’ 향수에 관한 자료가 생각났다.

샤넬은 1883년 8월 19일 프랑스 르느와르 강변 마을 수뷔즈에서 행상인의 딸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12살까지 자라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언니와 함께 고아원에 맡겨졌다. 고아원 시절의 검정 유니폼과 베이지색 복도, 성당의 중후하고 화려한 장식들이 감수성 강한 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후에 샤넬 패션을 이끌어 냈으며 또한 자신의 이름 딴 향수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 때 열애 중인 러시아 궁중 취향의 귀족이 샤넬에게 천재적인 조향사 에르네스트보를 소개했다. 이들 두 사람은 금세 향이 날아가 버리던 기존 향수와 달리 에르네스트보가 제시한 오묘한 화학성분 덕에 오래 지속된 5가지 향 중 마지막 것을 선택했다고 해서 ‘샤넬 NO 5’라는 이름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특히 “당신은 잠자리에 들 때 무엇을 걸치느냐”는 질문에 마릴린 먼로가 거침없이 “샤넬 넘버 5”라고 대답하여 더욱 인기를 끌며 30초에 한 개 판다는 세계적 상품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 자료가 어쩌면 그녀의 ‘향수병 안의 추억’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 경비실에 맡겨 두고 전화를 했다. 그 후 잘 찾아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한 번씩 생각났지만 서로가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전해줬던 복사지 나부랭이에 불과한 자료를 잊지 않고 경비실에 보내왔다. 봉투 속에는 그 자료뿐만 아니라 노란편지지에 그동안의 고마움과 기쁨을, 매일 미루다가 이사 가게 되어서야 전한다며 미안함이 편지 가득 묻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주소와 전화번호, ‘ㅇ 여운’ 이란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놓았다.

남을 위하는 배려로 화장의 마무리라는 향수, 사용할 때마다 그녀의 여운과 더불어 오늘 하루도 상큼하다.

박장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