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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금요일]발 칼국수 - 이상열

2012-02-02     경상일보
경주 가는 삼릉에는
삼릉보다 유명한 칼국수집 있더라
할머니 두 분 10년 넘게 손칼국수 만드는데
알고 보니 발 칼국수였더라
손으로 치대고 발꿈치로 조근 밟아
정월 보름 남산에 걸린 달만한 반죽거리
쌓으면 삼릉보다 당연히 높고
남산만큼 높을 텐데,
국수 가락 쫙 펴들면 서울 남산 갔다 왔을 텐데,
10년 세월 하루같이 손금 발금 다 닳도록
치성으로 빚은 국수 허기진 남산 부처님들
두루 먹여 살리시고 나까지 배부른데
할머니
오늘도 치대신다
조근 조근 찰 지게 치대신다
할머니 치댄 반죽 오릉(五陵)을 이루고 대릉(大陵)을 이루고
남산 위에 소나무처럼 오래오래 사시겠다

■ 이상열 시인은
1964년 경북 봉화 출생. 2005년 문학저널 신인상 수상. 수요시 포럼 회원. 화가, 울산작가회의 이사. 시집으로 <손톱이 아프다>가 있다.



천년고도 경주 남산 산자락 아래에서 피워 올리는 전설보다 아름다운 시편이다.
▲ 이기철 시인

보잘 것 없는 이력이라도 이렇게 칼국수 면발처럼 펴 놓으니 우선 반갑다. ‘손금 발금’처럼…. 아는 사람 다 알고 모르는 사람도 알 수밖에 없는 ‘발 칼국수’ 한 그릇.
‘허기진 남산 부처님들’과 ‘나’까지 배부르게 한, ‘국수 가락 쫙 펴들면 서울 남산 갔다 왔을’ 만한 삶의 궤적이 나타난다.
‘조근 조근 찰 지게’ 만든 소박한 밥상을 받아든 이들은 또 얼마나 행복할까. 아니 얼마나 그리울까.
‘경주 가는 삼릉’에서 ‘발 칼국수’로 우리의 허기를 채워 주시는 할머니. ‘남산 위에 소나무처럼 오래오래’ 사시기 바란다.
이기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