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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금요일]봄 - 이성부

2012-03-01     경상일보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 시인은
1942년 전남 광주 출생. 1960년 문예장학생으로 경희대학교 국문과 입학.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기자, ‘뿌리 깊은 나무’ 편집주간 등 역임.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대산문학상 등 수상. 시집으로 <우리들의 양식> <백제행> <빈 산 뒤에 두고> 등이 있다. 7년간의 긴 암 투병 끝에 2012년 2월28일 영면.


‘기다림 마저 잃었을 때’ 누군가가 찾아오는 일은 분명 반가운 일일 것이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같이 말이다.
▲ 이기철 시인

늦은 사연이야 빤하고 ‘다급한 사연’ 한 장 보내서야 온 기별이지만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그대를 용사처럼 받든다. 상처 입은 영혼이 거룩하듯이….

봄을 이리 서럽게 맞을 줄 몰랐다. ‘마침내 올 것이’ 오고만 것이지만 그는 가고 봄빛만 찬란하다.

평생 산을 좋아하여 ‘산(山)시인’으로 불리던 시인은 봄볕 한자락 우리에게 선사하고 스러졌다.

이기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