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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A to Z]낯섦과 익숙함의 경계가 낮아야 역동적인 도시

xeno-urbanism - 낯섦과 익숙함의 혼합체

2012-03-29     이재명 기자
* xeno : 접두사 alien, strange, guest의 뜻
* xenophilia(제노필리아) : 외국인에 매료되기, 끌려들기. 낯선 것 혹은 이방인이라는 의미의 ‘제노(Xeno)’와 사랑을 뜻하는 ‘필리아(Philia)’의 합성어. 이국적이고 낯선 것을 동경하고 좋아함
* xenophobia(제노포비아) : 낯선 것, 혹은 이방인이라는 의미의 ‘제노(Xeno)’와 싫어한다는 뜻의 ‘포비아(Phobia)’의 합성어. ‘이방인에 대한 혐오현상’을 나타냄.

■ 새로움에 대한 동경 ‘제노필리아’
서울 이태원·인천 차이나타운 등
이국문화 형성 통해 호기심 자극
지역 마케팅·관광기획 대상되기도

■ 이방인에 대한 혐오 ‘제노포비아’
지나친 자기 과보호·열등의식 때문에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방인 경계해
외국인 차별대우 국제사회 비판 일어

최근에 알게 된 한 외국인 교수가 있다. 그는 영국인인데, 이탈리아인 아버지, 영국인 어머니, 그리고 한국인 부인을 가진 ‘다국적 정서’를 지닌 사람이다. 올해로 서울살이 3년째에 접어든 그가 이방인으로서 한국도시, 특히 서울에 대한 도시인상을 가감없이 전하는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의 서울에 대한 첫 인상은 그리 좋지 않은 충격적인 것이
▲ 오키나와 중남부 미하마의 아메리칸 빌리지. 해안을 따라 있던 미군 비행장이 일본에 반환됨에 따라 미군시설이 집중되어 있던 기존 특성을 살려 1970~80년대 미국풍의 크고 작은 상점과 식당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오키나와의 미국인들과 관광객들의 향수를 일으키기 위해 ‘미국성’을 도시에 이식하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사진제공 유명희
었는데, 마치 ‘15세기의 도시구조에다가 21세기의 고밀도 도시를 우겨넣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서울이라는 도시를 한 번에 읽으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자신이 부딪쳐 경험하는 단편, 파편의 느낌들을 하나하나 연결해 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니 서울이 다시 보이더라는 것이다. 서울 안에 여러 이야기를 가진 수천, 수만 개의 도시가 있었고, 그 총체인 서울은 거대한 내러티브(서사) 덩어리였다는 것이다. 그의 스토리 중 하나는 도심 곳곳을 누비는, 제복 입은 유산균음료 배달 아주머니들을 ‘야쿠르트 부대’라고 표현한 글이었다. 이방인의 눈으로 볼 때는 정말 진기하게 느껴지겠구나 싶다. 보행문화위주의 유럽도시에서 살던 그가 서울에서 운전면허를 따고 도로 한복판에 올랐을 때 서울이라는 도시의 진면목을 비로소 알아볼 수 있었다든지, 실내공간만 너무 많아 좋은 외부공간까지도 실내에서 감상하는 지경이라는 비판 등, 필자가 익숙하게 여겨온 서울이라는 도시는 그의 글로부터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라나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정체성은 그 자신이 아닌, 그 자신으로부터 배제된 ‘타자성(他者性)’에 의해 다시 규명된다는 역설은 흥미롭다.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체성은 의미 없는 것이다. 타자의 상대적 시각으로 인해 차별화된 자신의 정체성이 비로소 명확해진다는 것이며, 때로는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 정체성의 내용 또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상하이 와이탄 지역 야경. 20세기 초 서구 열강의 조계지였던 곳으로 100년 넘은 서양식 건물들이 보존되어 상하이의 이국풍을 상징하는 풍경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도시의 정체성 또한 그렇지 않은가. 도시는 누구의 경험과 기억으로 만들어지는가? 도시 정주민들에게만 익숙한 도시는 새로움이 떨어지며 권태로워지고, 관광객들에게만 흥미로운 도시는 안정감이 떨어진다. 살아있는 도시는 도시의 모든 구성원 즉 정주민, 관광객, 유목적인 이방인 모두에게 서로 다른 차원으로 즐거움을 주는 도시가 아닐까 한다. 즉 낯선 익숙함과 익숙한 낯섦의 경계를 오가는 역동적인 도시 말이다.

필자가 본 연재를 통해 자주 언급했던 발터 벤야민도 그 자신 유태계 독일인 디아스포라(고향을 잃고 떠도는 민족)였다. 숙명적 타자의 입장에서 나폴리, 베니스, 파리 등 다양한 도시를 경험한 단상과 파편들을 수많은 글로 남겼고, 그에게는 도시의 평범한 일상이 도시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중요한 텍스트(단서)가 되었다.

다양한 역사를 경험한 거의 모든 도시에는 오랜 타자성이 굳어져 형성된 지역이 있다. 서울의 미군부대의 생활권으로 형성된 이태원, 1980년대 시화공단과 반월공단이 들어서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외국인들 집단 거주지가 된 안산역 원곡동 일대의 다문화거리, 인천의 차이나타운 등 사례는 무수하다. 최근 서울의 제일기획에서 한강진역까지의 640m 거리, 이른바 ‘콤데가르송 길’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프래그샵, 유럽식 레스토랑 등 고급 이국문화의 거리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러한 지역들은 이방인들에게는 향수를 달래는 익숙한 장소인 동시에 기존 도시민들에게는 이국풍에 대한 동경심과 호기심, 즉 제노필리아(xenophilia)의 대상이 된다. 이 점을 이용한 지역의 마케팅이나 관광기획, 장소디자인도 하나의 도시전략이 되기도 한다.
▲ 동경 오다이바 최고의 쇼핑몰로 꼽히는 팔레트타운 비너스포트 내부. 17~18세기 유럽도시를 그대로 재현한 거대한 쇼핑공간으로, 볼록한 천장디자인으로 정말 도시 외부 공간을 걷고 있는 착각을 일으킨다. 제노필리아(xenophilia)를 이용한 전형적인 기획이다.

한편, 새로움과 낯섬, 이국적 분위기에 대한 동경심을 나타내는 제노필리아 개념과 정 반대되는 사례도 있다. ‘이방인에 대한 혐오현상’을 나타내는 ‘제노포비아(xenophobia)’는 악의가 없는 상대방을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경계하는 심리상태의 하나로, 이는 자기 과보호 의식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고 지나친 열등의식에 기인하기도 한다. 역사의 질곡에서 외세의 침략과 아픔이 많은 동시에 최단기간 글로벌한 성공을 일구어낸 우리민족은 제노포비아와 제노필리아 어느 측면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최근 타자가 누군가에 따라 차별적인 호감과 적대감을 가지는 우리 국민의 성숙하지 못한 태도에 대해서 국제적인 비판이 일고 있기도 하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2년 현재 울산에는 총 88개국의 1만8426명의 등록외국인이 있고,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들의 구성비를 보면 방문취업(5210명)이 가장 많고, 연수·비전문취업(5121명), 결혼·동반·영주권(5091명), 무역경영·투자(1096명), 교육·지도 등사(1011명), 유학 및 연수·종교(786명)등의 순이다. 연령은 20~40대의 젊은 층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필자의 대학에서도 외국인 학생들과 교수들이 늘어나고 필자의 아파트에도 외국인 이웃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주말 도심 등지에서 외국인들과 마주치는 빈도가 매년 늘고 있는 느낌이고 식당에 가면 한국말이 서툰 서빙하시는 분들을 자주 접한다.
▲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그뿐 아니다. 산업도시 울산은 그 동안 무수히 거쳐간 국내 타지인, 이른바 ‘산업유목민’들의 협력으로 일구어낸 도시이기도 하다. 울산의 정주의식이 물론 높아지고 있지만 중·단기로 거주하는 타지인들 또한 울산의 시민이고 구성원이다. 울산이라는 도시는 이들을 포함한 타자들에게 어떠한 도시일까. 이들은 울산이라는 도시를 어떻게 기억할까. 이 도시의 이방인인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에게 익숙한 것은 무엇이고 그들에게 낯선 것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애정어린 것은 무엇이고 그들이 혐오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들이 어쩌면 울산의 정체를 더 정확하게 밝혀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유명희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