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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수필]극락과 지옥은 내가 만든다

자신이 지은 죄값과 나눔의 대가는
죽기 전에 다 받고 가는 세상
부끄럽지않은 삶을 위한 지혜 필요

2013-02-04     정명숙 기자
▲ 윤정문 울산지검 옴부즈만 전 강남교육청 교육장

스님 한 분이 절에서 먼 마을로 탁발을 나갔다가 날이 저물어 양반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스님은 주인과 하인이 대화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마당쇠야, 윗마을에 사는 박첨지가 어젯밤에 죽었는데 극락으로 갔는지 지옥으로 갔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스님은 일평생을 염불과 참선 수행을 하였지만 죽은 사람이 극락으로 갔는지 지옥으로 갔는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는데 마을에 사는 영감이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당쇠가 갔다 와서 주인에게 “지옥으로 갔습니다”라고 말했다. 저 마당쇠가 죽은 사람이 지옥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는 신통력을 가진 것인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데 주인이 또 마당쇠에게 “아랫마을 김진사도 죽었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한참 만에 돌아온 마당쇠는 “김진사는 극락으로 갔습니다”라고 아뢰었다.

하도 궁금해서 스님은 주인을 찾아가서 “처사님, 죽은 사람이 지옥에 갔는지 극락에 갔는지 도대체 어떻게 아시나요?” 물었다. 그러자 주인이 미소를 먹으면서 “죽은 사람 동네에 가면 금방 알 수 있지요.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 나쁜 일만 일삼고 남을 못살게 굴었으니 지옥 갔을거야! 라고 말하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지옥 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동네에 꼭 필요한 사람이고 남에게 많이 베풀던 아까운 사람이라고 모든 동네 사람들이 아쉬워하면 그 사람은 필경 극락에 갈 것이 아니겠습니까?”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재물 권력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모난 돌멩이가 정을 잘 맞는다’는 말이 있다.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 등은 모난 돌멩이와 같다. 우리 주위에도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벌은 꽃에서 꿀을 따지만 꽃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꽃을 도와준다. 빈 깡통이나 속이 가득 찬 깡통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나 많이 아는 사람은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무엇을 조금 아는 사람이 항상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남을 괴롭히고 부정을 많이 저지른다.

지금은 초스피드시대다. 그야말로 즉석 인과시대에 살고 있다. 자기가 지은 죄 값은 후대까지 가지 않는다. 본인 당대에 다 치른다.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감옥 속에서 눈물로 후회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하늘은 짓지 않은 복을 내리지 않고 사람은 짓지 않은 죄을 받지 않는 법이다.

우리 아파트 경로당에 걸어둔 액자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나이 들어 후회 하는 네 가지 사연들. 1. 젊었을 때 좀 더 참을 걸. 2. 있을 때 좀 더 베풀 걸. 3. 욕심 안 부리고 좀 더 즐길 걸. 4. 잘 나갈 때 좀 더 저축해 둘 걸.

사랑하면서 살아도 너무 짧은 시간, 베풀어 주고도 남는 것들인데 웬 욕심으로 무거운 짐만 지고 가는 고달픈 나그네 신세인가…. 그 날이 오면 다 벗고 갈 텐데. 무거운 물질의 옷도 화려한 명예의 옷도 자랑스러운 고운 모습도…. 사랑한 만큼 사랑 받고 도와준 만큼 도움 받았는데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만 몸부림쳤던 부끄러운 나날들….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극락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은 인간의 생명이 있는 동안 관념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이상향(理想鄕) 일 뿐이다. 자기가 지은 죄 값과 자기가 베푼 나눔의 대가는 자기가 죽기 전에 다 받고 가는 세상이다. 남이 지은 죄와 복을 내가 대신 받아 올 수 없고 내가 지은 죄와 복을 남이 대신 받아 갈 수 없다. 그래서 죽어서 간다는 극락과 지옥은 살아서 내가 만드는 것이다.

윤정문 울산지검 옴부즈만 전 강남교육청 교육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