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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혁칼럼]부엌에서도 경영을 하나요?

베이비붐세대 대량 은퇴시기 도래
요리·가사일 주부몫이란 인식바꿔
부엌경영으로 행복한 은퇴후 삶을

2013-04-08     경상일보
▲ 임진혁 UNIST 테크노경영학부 교수

미국 유학시절에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였던 필자와 연배가 비슷한 교수 한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25여년 만에 반갑게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교사인 부인이 불쑥, “글쎄, 이이가 오늘 처음으로 포도를 자신의 손으로 씻어 먹었지요”라고 하였다. 간 큰 남자 시리즈에 등장할 만하다. 2010년부터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생)의 대량은퇴가 시작되었다. ‘가정 재취업’이란 표현처럼 가사일에 생소한 많은 은퇴자들은 새로운 문화적 충격 내지는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은퇴한 남자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가 ‘아내, 와이프, 처, 마누라, 안사람’이란 말이 있다. ‘영식님, 일식씨, 이식 놈, 삼식xx’, ‘아내가 곰탕을 끓이면 두려워하는 남자’ ‘남편은 골칫덩어리 시리즈’ 등과 같은 우스갯 소리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일상사 특히 식사해결을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요즘같이 외식산업이 잘 발달한 시대에 무슨 식사 걱정을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경제력만 있다면 맛집을 찾아 다니면서 골라서 먹어도 다 찾아 먹지 못할 만큼 풍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의 건강’이 주된 관심사인 하버드 대학교 보건대학교 교수들의 예를 살펴보자. 이들은 늦은 퇴근으로 인해 여타 직장인들처럼 저녁식사를 식당에서 해결하거나 패스트푸드를 사서 집에서 가족들과 먹었다. 그 결과, 외식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문제가 아니라 ‘고칼로리, 인공조미료와 나트륨 과다섭취’ 등과 같은 성인병 유발요인으로 인해 타인의 건강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건강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서 저녁식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쉽게 건강식을 만들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필자는 저녁약속 등과 같은 외부적 요인이 없는 한 퇴근 후 집에서 저녁식사를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요리를 언제 배웠나요”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 “따로 배워 본적이 없습니다. 저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학자로서 경영을 합니다”라고 대답한다.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하며 의아해 한다. 대학 입학 때 ‘경제학’과 ‘경영학’의 차이가 뭔지 몰랐기에 ‘경영’이란 단어에 이끌려서 후자를 선택하였다. 경영원론 원서 첫 장의 시작이 “Is management an art or a science”였다. ‘경영이 예술인가 과학인가?’로 번역되었기에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당시는 데모로 인해 수업이 학기 초부터 중단되던 터이라 이에 대해 설명을 들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 후 경영학자가 되고서야 비로소 이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art’는 협의적 의미의 미술 같은 예술분야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광의적 의미로서 경험으로 습득하는 기술을 말한다. ‘science’는 물리 혹은 화학 같은 자연과학분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에 기초한 학문을 의미하며 인문학, 사회학도 포함한다. 쌀가게 종업원으로 출발한 정주영씨가 세계적 기업들을 이루어 낸 경영노하우는 ‘기술’에 해당되지만 ‘정주영 경영학’은 ‘과학’에 해당된다. 아주머니들이 김치를 잘 담그는 것은 ‘기술’이며 그 방법을 체계적으로 기록하여 요리법을 타인에게 전수할 수 있으면 ‘과학’이 된다.

요즘의 전기밥솥,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과 같은 가전제품들은 남자들이 직장에서 능숙히 다루는 전자제품 수준으로 복잡하다. 안내책자를 읽어보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 경험에 주로 의존하는 주부보다 더 잘 활용할 수 있다. 또한 각종 요리법이 잘 기록되어 있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에는 굳이 많은 경험이 없더라도 이론적 바탕에 근거하여 음식을 만들기가 용이하다. 이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하여 ‘부엌에서 경영을 한다’라고 표현하였다. ‘이탈리아 남성의 95%가 세탁기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는 뉴스를 읽은 적이 있다. 세탁기 사용법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유럽인들 중에서도 마초기질이 강한 이탈리아 남성들의 사고 속에 부엌일을 포함한 가사일은 주부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많은 남성들의 가정 재취업을 위해 ‘요리를 배우세요’하는 대신, ‘부엌경영 혹은 부엌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자가 학습 내지 필요한 연수를 받으세요’하면 기존의 인식을 바꾸지 않고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골치덩어리가 아닌, 자격을 갖춘 정규직으로 당당히 가정에 재취업하여 행복한 은퇴후 삶을 누리도록 하자.

임진혁 UNIST 테크노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