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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다가가는 남성열전]바람은 하얀 슬픔을 토한다

88. 안도 다다오

2013-06-10     이재명 기자
▲ 삽화= 화가 박종민

유혹은 아름답다. 푸른 유월의 달빛이 푸르다 못해 숙연하다. 마음 빼앗기는 일이 자연이든 사람이든 간에 더러는 그리하며 산다. 유월의 밤은 서늘함 속에 찔레꽃 향기로 익어간다. 달빛이 교교히 창가에 비쳐들고 바람결에 커텐 자락이 흔들린다.

화려한 장막을 걷어 올리고 아름다운 잔에 차를 따른다. 고독은 슬픔과 즐거움을 절제하고, 때로는 기쁨과 노함을 누그러뜨린다. 어찌해도 떨쳐버릴 수 없는 적막함 속에 도도하고도 고독함으로 인생의 강은 깊어간다.

사람의 입에서 열리는 말도 과묵함이 필요하듯이 건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안도 다다오를 생각한다. 건축은 그의 과묵한 언어이다.

그는 시각에 집중하고자 할 때 음악소리 보다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건축의 본질을 빛과의 관계에서 찾으려고 애쓴 건축가이다.

지난 2월 말에는 <21­21 Design Sight>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기법인 노출 콘크리트와 대형 철판을 접어서 만든 지붕의 대담한 직선이 인상적인 미술관이었다.

동경의 롯폰기 미드타운에 있는 디자인 전문 미술관으로, 건물 자체가 디자인이 아닌 디자인적인 사고를 전시하는 미술관이라고 보고 싶었다.

단층 건물이었지만 초고층 빌딩이 늘어선 미드타운에서 유독 당당해 보인다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지붕의 철판은 일본에서 가장 크게 만들어진 것으로, 기술과 디자인을 집약한 미술관을 만들려는 설계자의 의도가 분명했으며, 일본 디자인의 힘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겉에서 보면 땅 위로 드러난 건물은 마치 나지막한 온실처럼 보이지만, 지하에는 천장이 높은 전시실과 가든(sunken garden)이 있었다.

미술관 기능을 하는 부분은 모두 땅속에 있고, 땅 위에 있는 현대식 건물은 정원의 자연스러움 그대로였다.

안도 다다오 그가 찾아낸 ‘노출 콘크리트기법’은 콘크리트가 만들어 내는 차갑고 조용한 공간에 빛이 흘러 들어와 벽에 비치면서 소재 자체를 초월한 부드러우면서도 투명한 공간을 변화시킨다. 그에게 있어 벽은 실체로서 보다는 둘러싸인 공간으로 건축의 본질을 표현한다.

나는 그의 노출콘크리트 기법에 마음 빼앗긴지 오래이다. 대리석보다도 차갑고 단순한 벽면에서 섬세한 건축가의 감정을 읽는다.

최근에 개장한 원주의 한솔뮤지엄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또 다른 건축 작품이다. 선 걸음에 한솔뮤지엄을 찾았다.

미술관의 전체 구조를 한꺼번에 드러나게 하지 않았다. 오솔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비로소 하나씩 수줍게 드러나곤 했다.

미술관 본관은 막힌 듯 열려 있었으며 감추었다가는 제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예술을 전시하는 뮤지엄 건축물은 공기, 물, 돌과 함께 건축가의 건축 예술혼이 더불어 느껴졌다.

빛의 산란을 이용해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둥근 돔 형태의 전시관에서 인공의 빛과 함께 감상하는 일몰은 안도의 또 하나의 작품이었다.
 

▲ 한분옥 수필가·울산예총 회장


그의 건축가로서 독특한 경력과 풍모와 매력적인 말투를 기억한다. 목이 쉬었지만 탁하지 않은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 그 여운에 깊은 고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늘 고독과 적막함이야 말로 창작 혼의 모태라고 이야기했다.

떨쳐버릴 수 없는 적막함 속에서 창작의 영감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는 것인가.

숨 막히도록 유월은 아름답다. 꽃바람은 가슴을 촉촉이 적시고 마음을 부풀게 한다. 푸른 유월의 달빛에 취하여 새들도 어찌 이리 절창인지 수줍은 바람은 하얀 슬픔을 토한다.

자신은 어디쯤 가고 있으며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유월이다. 가장 아름답게 놓여나고 싶은 유월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