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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동칼럼]혼돈과 질서는 함께 생겨난다

무작위·무질서 속에 규칙성 숨어 있어
예측불가능이라는 식의 책임회피 말고
사고의 틀 깨면 사회혁신·발전 가능해

2013-06-17     경상일보
▲ 울산대학교 초빙교수 전 울산과학대 총장

카오스(Chaos, 혼돈) 게임이라는 게 있다. 한 장의 종이와 동전 한 개, 그리고 두 개의 규칙이 필요하다. 규칙은 동전을 던져 앞면과 뒷면이 나올 때 각기 적용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만약 앞면이 나오면 종이 위의 임의의 한 점으로부터 ‘북동쪽으로 2인치 이동하라’거나, 뒷면이 나오면 ‘거기서부터 중앙으로 25% 가까이 가라’는 등으로 각자 만들면 된다. 게임 시작의 처음 50개의 점은 무시하고 51번째 점부터 찍어 나가면, 게임이 진행되어 감에 따라 점들이 임의적으로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현상이 생겨나면서 점차 분명한 형태를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카오스 게임을 통하여 우리는 무작위적이고 무질서한 과정 속에 어떤 질서가 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렇듯 자연은 예측 불가능한 매우 복잡한 무질서 속에서 스스로 질서 정연한 정보를 창출하며 진화하여 왔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대기의 움직임, 은하의 성단, 복잡한 해류, 구름의 모양, 깃발의 펄럭임, 심장의 진동, 야생 동물 수의 변동, 주식 가격의 변동, 고속도로를 흐르는 자동차들의 행렬 등은 자연이나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혼돈스러운 현상이다. 이러한 무질서 속에 존재하는 질서를 찾고자 하는 학문을 ‘카오스 이론’이라고 한다. 20세기 과학적 사고의 ‘패러다임(Paradigm)’을 변화시킨 상대성 이론은 ‘공간과 시간이 절대적이다’라는 뉴턴(Newton)의 환상을 깨뜨렸다. 이에 반해 카오스 이론은 ‘어떤 복잡한 계에서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라는 라플라스(Laplace)의 결정론적 환상을 깨뜨렸다고 할 수 있다.

IBM사의 연구원이었던 만델브로트(Mandelbrot)는 미국 면화 가격의 변동을 조사하다가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였다. 매일의 가격 변동은 임의적이고 예측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매달의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곡선과는 거의 일치하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 차례의 대공황을 거치는 60년 동안, 변동의 정도도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면화 가격 변동이라는 매우 무질서한 자료 속에 예기치 못했던 질서가 있었던 것이다. 즉 면화 생산이라는 자연 현상 뿐만 아니라 가격 변동과 연관지을 수 있는 사회 경제 현상에서도 혼돈과 질서는 함께 생겨나고 있었다.

해안선의 길이는 큰 자로 재었을 때보다 작은 자로 재었을 때 그 길이가 늘어난다. 그리고 그 길이는 측정 단위가 작아짐에 따라 한없이 늘어난다. 해안선상의 만과 반도는 그보다 더 작은 만과 반도를 계속 포함하며, 원자 규모로 축적을 줄일 때까지 계속된다. 하나의 패턴 내에 패턴을 되풀이하는, 자체 유사성을 띠는 이러한 형태를 ‘프랙털(Fractal)’이라 부른다. 자연의 모습은 프랙털이다. 들쭉날쭉하고, 엉키고, 꼬이고, 쪼개져 있는 프랙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질서는 혼돈된 임의성으로부터 창출되어 나온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고도로 진화하고 있는 자연과 복잡한 사회 속에서 대체로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고 이루어진다.

다음과 같은 서양의 전례 민요가 있다. ‘못이 없어 편자를 잃었다네./ 편자가 없어 말을 잃었다네./ 말이 없어 기수를 잃었다네./ 기수가 없어 전투에 졌다네./ 전투에 져서 왕국을 잃었다네.’ 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회에서도 일련의 사건들 중에서, 작은 변화를 확대 재생산시키는 결정적 시점이 있을 수 있다. 우리의 사회는 이러한 변화와 이에 따라 빈번히 발생하는 이상 현상으로 혼란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때, 사고방식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혁신적으로 바꾸면 사회발전에서 중요한 진전이 일어날 수 있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나와는 관계가 없다’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등의 책임 회피적이고 보수적인 사고방식은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혁신적인 사고방식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야 말로 혼돈과 질서가 공유하는 사회에 끊임없는 자극을 주어,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혼돈 속에 질서가 숨 쉬는 조화로운 사회로 발전시켜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울산대학교 초빙교수 전 울산과학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