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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 칼럼]공동체주의

사회적기업·협동조합에 관심 높지만
효율 외면한 ‘감상적 구호’에 가까워
기존 기업에 채워진 족쇄부터 풀어야

2013-07-04     경상일보
▲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사람들은 뭔가 참신한 방법에 귀가 솔깃해진다. 나라의 일을 맡은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산 지원을 통해 사회적 기업 육성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7년까지 사회적 기업 3000개를 육성하고 이 분야에서 일자리 10만개 창출을 통해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7월 ‘협동조합도시 서울’이란 비전을 발표하고 협동조합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해 출범식에서 박 시장은 “협동조합은 빠른 경제성장에 따른 문제점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라고 소신을 피력한 바 있다.

두 가지 모두 공동체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미 충분한 실험을 거친 성장모델이 왜 근래에 또 한번 각광을 받고 있는 가라는 점에 관심을 갖게 된다. 만일에 두 가지 성장모델이 충분한 경쟁력이 있었다면 이들은 사기업 못지 않게 이미 지금 세계 각국에서 유력한 조직으로 성장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은 특수한 분야에서 특수한 상황에서 존립이 가능한 조직의 형태일 뿐이다.

마을 단위에서 이런 운동을 펼치는 것은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혹은 서울시 차원에서 이런 조직 모델에 대해 예산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며칠 전 중앙의 한 유력지에는 관련 부처의 장관이 ‘왜 사회적 기업인가’라는 칼럼을 기고한 바가 있다. 유심히 읽던 중에 상당히 감상적인 호소가 여러 곳에 들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의 논지는 사회적 기업은 효율성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착한 기업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 사회의 부족한 서비스를 보완하고 얻어진 수익을 다시 소외계층 지원에 재투자하기 때문에 착한 기업이며, 다른 사람에 대한 나눔과 배려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기업이라고까지 극찬한다.

나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의 소규모 실험은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 정부가 나서는 육성정책이 대부분 뒤끝이 좋지 않다. 정권이 바뀌면 자생력을 갖는데 실패한 조직들은 예산을 낭비하는 하마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만 하더라도 의사결정의 원칙은 1인 1표주의이다. 이런 지배구조하에서는 어떤 혁신적인 실험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사람들은 협동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모든 사업은 다수결에 따라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이미 20세기를 거치는 동안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과 같은 조직모델은 저비용 고효율을 특성으로 삼는 주식회사에 그 자리를 내놓은 지 오래 되었다.

우리가 더 잘 살기를 원한다면 대박이나 요행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이론이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조직의 미래에 대해 상당한 예측력를 발휘할 수 있다. 그것은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과 가치 창출이란 면에서 주식회사 제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조직 형태는 등장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모델에 우리사회는 귀가 솔깃해지는 것일까? 일자리 때문이다.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술 방망이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공동체주의는 언제나 감성에 대한 호소력이 크지만 실제 그 실효성은 제한적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기존의 기업들이 좀더 기업 본연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할 수 있도록 족쇄를 풀어주는 일이어야 한다. 기업들은 너나할 것 없이 국내의 대규모 투자를 억제하고 있다. 왜, 기업들이 그렇게 하는지 그 이유를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수술만으로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자꾸만 갈등이나 고통이 따르지 않고 근사한 구호나 슬로건이나 모델에 매달리는 것 같아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론이나 역사적 경험은 결코 공동체주의가 성공할 수 없는 모델임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우리는 또다시 본질이 아니라 겉치레를 하면서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다.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