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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조 칼럼]그림…그리움

그림은 제 영혼의 그리움을 담아낸 것
고향·조국·연인을 향한 마음이 클수록
간절함 녹아든 작품세계는 더 큰 감동

2013-08-26     경상일보
▲ 신국조 울산과기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화학

얼마 전 타계한 동양화가 백계(白溪) 정탁영(鄭晫永)은 그의 화문집 <잊혀진 것들>에 실린 수필 ‘한국인의 마음과 표현’에서 ‘그림은 그리움(선망, 동경)을 그려내어 마음을 보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강원도 횡성이 고향인 그의 산수화에는 어쩔 수 없는 망향의 그리움이 소복이 담겨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그림은 ‘선이나 색체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평면 위에 나타낸 것’ 또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생각함’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실 ‘그림을 그리는 마음과 고향과 조국과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쩌면 같은 것이 아닐까. 물론 다급한 생계를 위하여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면 진정으로 화가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자신의 영혼의 그리움을 담은 그림이 아닐까.

35세에 요절한 이탈리아의 화가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와 그가 죽은 다음 날 5층 건물에서 투신하여 생명을 마감한 그의 아내이며, 모델이며, 역시 화가인 쟌느 에뷔테른은 서로의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모딜리아니의 초상화의 특징인 목이 긴 에뷔테른과 에뷔테른의 눈에 비친 환상적인 미남 모딜리아니의 초상을 보면서 그들이 그린 그림은 과연 서로에 대한 그림(그리움)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와는 좀 다른 경우도 있다. 19세기 미국의 화가인 제임스 휘슬러는 ‘백색 교향곡’에 자신의 연인인 조안나 히퍼넌을 순백의 청순한 이미지의 여인으로 그려 놓았다. 같은 여인을 휘슬러의 친구인 귀스타브 쿠르베는 ‘잠’에서 관능적인 누드의 동성애 여인으로 그려 놓았다. 이쯤 되면 한 여인을 향한 그리움도 어쩌면 이렇게도 서로 다를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스러져 갈 육신을 아까워하지 않았던 장욱진 화백의 회고전에 전시된 미륵보살과도 같은 여인의 초상에 그는 가사를 전담하느라 엄청난 고생을 했던 부인을 그려 놓았다. 몇 달씩 집을 비우는 무책임한 남편을 원망했을 부인을 향한 그의 속 마음속 그리움을 그렇게 보여준 셈이다. ‘제주화’로 유명한 변시지 화백은 그의 고향인 제주도에 내려가 젊은 시절의 일본 유학, 그 후의 서울 생활을 통하여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 바다를 마음껏 그리다 얼마 전에 타계하였다. 젊었을 때의 극사실화가에서 말년에 ‘제주화’ 화가로의 변신은 그의 내면에 쌓여 있던 망향의 한을 마음껏 풀었을 것이다.

음악도 그리움을 노래한다. 1931년에 작곡된 ‘해는 져서 어두운데…’로 시작되는 현제명의 ‘고향생각’과 1927년에 발표된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의 ‘고향의 봄’은 모두 나라를 잃고 중국 대륙을 떠돌던 우리 민족들에게는 망향의 그리움을 달래주었을 것이다. 또한 1942년에 ‘울밑에선 봉선화야…’로 시작되어 ‘…네 모양이 처량하다’로 끝나는 홍난파의 ‘봉선화(鳳仙花)’를 일본 땅에서 불러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소프라노 김천애는 심저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로 얼마나 많이 우리 민족의 영혼을 달래 주었던가.

시문학에도 그리움이 넘나든다. 파인(巴人) 김동환이 1925년에 발표한 한국 최초의 서사시에서 ‘북국의 겨울 밤은 차차 깊어 가고…’ ‘국경의 밤이 저 혼자 시름없이 어두워 가는데…’ ‘검은 외투를 입은 순사를 피해 두만강을 건너간 남편’을 홀로 남은 여인이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있다. 노천명의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인’ 사슴은 그녀가 그리워한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었을까. 백석(白石)은 ‘… 흰 당나귀가 응앙응앙 울고…푹푹 눈 나리는 밤에’ 오지 않는 나타샤를 무척 그리워하였나 보다. 이생진이 1978년에 발표한 장편 서사시에는 ‘사람이 노래하는 슬픔과 절망을 들어주는 성산포 앞바다’가 있어 떠나간 그 사람을 향한 그리움을 달래주고 있다.

떠나 온 고향, 잃어버린 조국, 그리운 연인을 그리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그리울수록, 슬플수록, 애절할수록 그러한 마음을 담아 놓은 그림, 노래, 시 등이 더 큰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렇게 작가들이 보여준 그들의 마음을 담은 작품을 접하며 우리도 그리움과 아픔을 달래게 된다. 올 여름 철에 우리는 무엇을 그리며 유난히도 맹렬한 폭염을 잊을 것인가.

신국조 울산과기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