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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혁 칼럼]빠르지만 느린 삶이란?

과거엔 목표 위해 과정을 희생했다면
빠르게 변해가는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천천히 과정을 즐겨야 행복할 수 있어

2013-10-07     경상일보
▲ 임진혁 UNIST교수·경영정보학 박사

한국 최초의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 7월7일에 완공되었다. 이듬해에 대학진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 필자는 5시간 만에 울산에 도달하는 최신교통수단인 고속버스를 타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1984년부터는 비행기를 이용하여 울산공항으로 1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11월에 KTX 울산역이 개통됨에 따라 서울을 오가는 교통수단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삶을 경험하게 한다. KTX 잡지 왼편 상단에 있는 표어(Fast, but slow life)가 이를 한마디로 잘 요약해서 표현하고 있다.

1973년 극심한 석유 파동을 겪은 후 미국의 경제학자 갈브레이스는 1977년에 펴낸 그의 저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기존의 경제이론으로는 더 이상 설명하거나 예측하기 힘든 시대가 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근본적 이유는 변화의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가 얼마나 빨리 진행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인류가 10만 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나서 서서히 증가하다가 서기 1000년부터는 급격히 증가하였다. 19세기의 산업화 시대 이전까지는 일인당 소득과 국가 총생산에서 그리 큰 차이가 없다가 산업화 시대 이후부터는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여 요즘은 양극화가 큰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경제개발을 시작한 1962년 당시 일인당 소득이 87달러의 최빈국에서 2012년에는 2만 달러가 넘는 경제부국이 되었다. 경제발전의 속도도 빨랐지만 소득격차도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다.

불변할 것 같던 결혼의 정의가 요즘 서양에서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추세에 따라 ‘남녀 간의 결합’에서 ‘성인간의 결합’으로 바뀌고 있다. 1960년대에 처음으로 산아제한 정책이 도입되면서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면서 자녀 숫자를 4명으로 하도록 권장하였다. 1970년대에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80년대에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다. 그러다가 1990년 중반에 산아제한 정책이 슬그머니 폐지가 되었고 2005년에는 출산장려기관이 생겼고 근자에는 국가가 주요한 정책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이제는 출산율 세계 최저 국가가 되어 이민족과의 결혼이 늘어나다 보니 단일민족이란 말 대신 다문화가정이란 용어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변화의 속도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 말하는 것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변화는 처음에는 서서히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급격히 빨라진다. 2009년 11월에 스마트폰이 한국에 소개되었을 때 ‘무슨 전화가 이렇게 크고 복잡한가?’라면서 시큰둥했었다. 그러나 3년만인 2012년의 보급률은 68% 즉 국민 100명당 68명이 사용하여 세계 1위였다. 변화가 심하면 예측이 어렵고 경험이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빈번하여서 적응하기 힘들기 때문에 기피하게 된다. ‘신이 부러워하는 직장’인 공무원과 교사 같은 안정적 직업을 선호하는 사회적 현상은 이에 기인한다. 예기치 않았던 현상 즉 블랙스완(Black swan)이 언제 튀어 나올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현상유지 내지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이 사실은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 변화의 속도에 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빨리 따라가야 하지만 속도만 높이면 그에 따른 위험과 스트레스도 상승한다. 따라서 빠른 것과 느린 것을 적절히 융합하여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금년 초 용평에서 학부교수들의 워크숍이 있었는데, 필자에게는 가기가 아주 불편한 장소였다. 버스를 타고 단체로 이동하든가 아니면 자동차로 운전해서 가는 것이 대안이었다. 필자는 제3의 대안을 택하였다. 스포츠카를 타고 동해안을 따라 신나게 달리다가 좋은 곳이 나오면 한참을 즐기다가 다시 출발하곤 하였다. 바로 갔더라면 5시간 걸렸을 거리를, 달릴 때는 빠르지만 전체적으로는 느리게 여유를 부리면서 9시간에 걸쳐 도달하였다. KTX기차도 승객이 차장 밖으로 보면 매우 빠르게 달리지만 그 안에서는 느리게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종전에는 목표달성을 빨리 하기 위해 과정을 희생했어야 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목표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과정을 즐겨야 자신감이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이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이라는 것이 실증적으로 증명된다. 속도가 빨라졌기에 더욱 많은 것을 처리하려다 보면 ‘빨리, 빨리’의 쳇바퀴 속으로 점점 더 빠지게 된다. 그 대신 우선순위에 따라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선택하여 몰입하면 빠르지만 느린 삶을 통해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임진혁 UNIST교수·경영정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