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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세계명화](71) 카라바조의 ‘바쿠스’

진리로부터 멸망하지 않도록 우리는 예술을 갖고 있다

2013-10-15     이재명 기자
▲ <바쿠스>, 캔버스위 유화, 85×98cm, 1594년작, 이탈리아 우피치미술관소장

예술이란 무엇일까? 고대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해 왔지만 니체는 ‘힘에의 의지’에서 “진리는 추악하다. 진리로 말미암아 멸망하지 않도록 우리는 예술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니체의 영향이 현대에도 완강한 가운데 그의 말은 오늘날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예술이 가진 힘과 자유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의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를 비롯해서 현대의 수많은 철학자들은 그동안의 세계를 이끌어 왔던 진리와 선의 한계를 언급하며 예술의 역할을 기대한다. “철학은 없고 철학사만 있다”는 현대철학의 반성이나 혹은 참된 삶보다 교리의 해석에 구태의연하게 머물며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대의 종교에 대한 지적의 말이기도 하다.

철학과 종교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세계이다. 참과 거짓, 옳고 그릇된 냉철한 진위여부, 혹은 언어로 구성된 딱딱한 특성을 가진 개념의 세계이다. 반면에 예술은 자유로운 상상과 감성을 가진 세계이다. 어린 아이로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즐기며 행복해 하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비록 그것이 진리나 선과는 거리가 있지만 언제나 아름다움을 지향하며 삶의 다양한 의미를 끝없이 풍부하게 만든다. 때문에 예술적 삶은 언제 어디서나 행복한 것이다. 이것이 곧 삶의 진리이며 선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지향해야 할 근원적인 삶의 방식이 되는 것이며, 니체는 이러한 내용으로 예술을 통한 진리와 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예시된 그림은 ‘카라바조’의 ‘바카스’이다. 바카스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의 다른 말이다. ‘술의 신’, 혹은 ‘이론적 인간’과 대립되는 ‘감성적 인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젊게 표현된 그림 속의 바카스는 무표정하면서도 약간의 취기 있는 눈매로 그림을 보는 우리들에게 포도주를 권하고 있다. 그림을 보는 관람자에게 전하는 답례와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에게 한 잔의 술을 권하는 신의 너그러움을 표현한 듯하다.  

▲ 곽영화 화가·칼럼니스트

그러나 카라바조가 그린 신의 모습은 인자하거나 위엄을 갖기보다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신의 모습보다 생활 속에서 보는 젊은이를 느끼게 한다. 큰 꽃으로 만든 화관을 쓰고 관능적이면서도 육감적인 신격이 오히려 인간으로 변한 듯 보인다. 카라바조는 왜 그림을 보는 우리들에게 술을 권하는 바카스의 모습으로 그렸을까? 외형적 모습은 인간으로 보이지만 개념은 신격이다. 당시의 이 그림을 본 관객들은 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다고 전해지기에 당시의 음주문화에 대한 카라바조의 비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규는 예술을 ‘잠수함 속의 토끼’로 비유한다. 바다 속에서 잠수함의 산소를 측정하기 위해 토끼를 데려가 토끼의 상태를 통해 산소의 정도를 확인했던 경험을 비유한 말이다.

예술은 사회와 국가의 발전과 전망의 정도를 확인하는 척도라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예술은 건강한가? 또는 활성화되는 예술의 기운이 왕성한가? 그것의 자유로운 다양한 발전 의지를 막아선 것은 무엇인지 언제나 눈여겨 볼 일이다.

카라바조의 작품이 비록 당시의 세인의 비판을 받은 것일지라도 그것이 예술이기에 오늘날까지 우리는 그의 그림을 통해 삶의 즐거움과 행복감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