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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동 칼럼]퍼지적 사고

현실세계는 흑-백으로만 나눌 수없어
이분법적 수학적 잣대로 평가하기보다
여러 계층의 다양한 의견도 존중해야

2013-12-16     경상일보
▲ 이수동 울산대학교 전기공학부 초빙교수 전 울산과학대총장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시켜온 문명의 많은 부분은 수학과 과학의 발달에 의존하여 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수학과 과학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참과 거짓으로 구분짓고자 하는 흑과 백의 2분법적 논리 사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2진 논리는 ‘이것이거나 또는 이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하늘은 푸르거나 푸르지 않다’이지 ‘하늘은 푸름과 동시에 푸르지 않다’일 수는 없다.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닌’ 세계를 기술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수학의 법칙들이 현실세계를 언급하는 한, 그것들은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수학이 확실한 한, 그것들은 현실세계를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현실세계를 참과 거짓, 그리고 흑과 백의 세계만으로 나누기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세상의 제반 현상들은 애매하고 불확실해서, 엄밀하고 확실한 수학적 논리만으로는 표현되어질 수 없다. 과학의 법칙들 또한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세상의 한편에서 최근에 발견한 경향을 기술하여 현재까지는 옳다는 것뿐이다.

부처(Buddha)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 약 2세기 전에 이미 2진 흑백 논리의 세계를 깨고, 언어로 표현되는 세상에는 ‘푸름과 동시에 푸르지 않은 하늘’과 같은 사실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항상 변하며(제행무상),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실체란 없고 인연에 따라 생멸한다(제법무아)는, 회색 지대를 설정한 것이다. 2치성(bivalence)의 사고로부터 다치성(multivalence)의 사고로, 우리의 사고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고 할 수 있다.

‘운동하고 있는 입자의 속도와 위치를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원리의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하이젠버그(Werner Heigenberg)는 ‘많은 과학적 진술은 확실한 것이 아니라 불확실하며, 회색 즉 퍼지(fuzzy)이다.’라고 하였다. 퍼지는 회색지대를 묘사한다. 우리가 ‘A는 키가 크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들은 ‘키가 크거나 크지 않다’ 중의 한 범주에 속한다. 사회 통념상 175cm 이상을 ‘키가 크다’고 한다면 174cm는 ‘키가 크지 않다’이다. 그러나 퍼지 논리는 170cm를 ‘0.9만큼 키가 크다’ 등으로 표현한다. 애매하고 느슨하고 불확실한 회색지대를 퍼지 논리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퍼지는 컴퓨터의 ‘0’과 ‘1’의 2진 ‘비트(bit)의 세계’로부터, ‘0’과 ‘1’ 사이에서 적절한 값 하나를 취하는 ‘적합도(fit)의 세계’로 우리의 사고를 전환시킨다.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에서 ‘어느 정도는 적합한’ 사고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A이거나 A아닌’에서 ‘A이며 동시에 A가 아닌’ 것도 인정하는 사고로 우리를 이끈다. 2치성의 사고로부터 다치성의 사고로의 전환은 단순하며 부정확한 사고를 다양하며 더 정확한 사고로 바꾼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옳고 그름만의 2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애매하고 불확실하기도 한 다양한 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퍼지적 사고는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게 한다.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견도 존중하게 한다.

우리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의 사고방식도 시대와 사회의 변화와 함께 변하고 있다. 어제 옳다고 믿었던 사실들이 오늘은 틀릴 수도 있다. 새로운 변화에 부응하는 다양한 퍼지적 사고들이 사회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이렇듯 새로이 생겨나는 퍼지적 사고들로부터 적합한 규범들을 도출하여, 새로운 원칙들을 세우고 채택하여 우리 사회에 적용해 나간다면 많은 갈등은 치유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재판에 적용한 퍼지 재판은 변화하는 사회에 적합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법조문에만 의지하고 있는 현재와 같은 2치성의 재판이 시대에 걸맞은 사고도 포용하는 정확한 퍼지 재판으로 바뀌는 것이다. 요즘같이 권위가 실종되고 있는 풍토에서, 퍼지적 사고를 통해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을 도출하여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수동 울산대학교 전기공학부 초빙교수 전 울산과학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