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이야기로 읽는 세계명화](77) 프리드리히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예술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2014-01-28     이재명 기자
▲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캔버스위 유채, 94×74cm, 1818년, 함부르크 아트센타.

모든 예술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특히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작품은 더욱 더 그렇다. 미학자들은 시간이 흘러도 도태되지 않고 여전히 살아남아 감동을 주는 작품이 세계적인 명작이라 말한다. 시대를 뛰어넘는 감동이 있어야 명작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감동의 주된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적 질서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당대의 사람들과 미래의 사람에게까지 감동을 주는 새로운 세계의 제시이자,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의 부조리와 부조화가 없는 참된 세계를 제시할 때 가능해 진다는 말이다.

새로운 세계는 흔히 우리가 예상하는 도솔천이나 파라다이스와 같은 이상적인 사회도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본질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미적 질서로 구축된 본질의 세계가 가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작품의 주된 목표이자 세계적인 명작이 되기 위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

예시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가지며 어떤 감동을 가질까? 지팡이를 짚고 벼랑위에 홀로 선 남자 앞에는 광활하고도 거친 대자연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대자연을 앞에 둔 남자는 왜 이곳에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은 듯 예사롭지 않으며, 비장하게 보이기도 하며 짙은 고독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거친 대자연과 같은 인생의 장애물에 대항하고 헤쳐 나가려는 강한 의지를 결의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햇살을 받으며 펼쳐진 안개와 구름은 신비롭기도 하지만 무심한 세파와 같이 무정하게 느껴지기도 하며 멀리 있는 산봉우리는 마치 그가 도착해야 할 목표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곽영화 화가·칼럼니스트

프리드리히는 19세기 전반에 독일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작가이자 풍경화가이다. 그의 관심사는 대부분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성찰과 표현이었으며 그에게서의 자연은 신비로운 신성지이자 모든 생명의 안식처였다. 때문에 그는 육안으로 보이는 풍경을 단순히 캔버스에 옮기는 복제풍경이 아니라 주관적인 심미안으로 표현하는 상징적인 풍경화를 제작하였으며, 자연을 개발대상으로 삼는 인간의 이기적인 문명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가 그린 대부분의 작품은 풍경화이면서도 강한 메타포를 갖는다. 당시의 작가들은 그의 작품을 ‘비극적인 풍경의 발견자’로서 풍경을 통한 인간의 미래와 운명에 대한 회화적 제시로 여기기도 하였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자연에 거처하는 방랑자로 여긴 듯하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달리 인간은 스스로 만든 개발문명의 폐허에서 스스로 우울하면서도 고독하며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200여 년 전, 그의 예견과 우려처럼 오늘날의 인간의 운명은 대도시의 고층빌딩숲이 만든 차가운 그늘 속을 정처 없이 뛰어다니는 현대인의 삶으로 이어진다. 인간이 만든 문명의 구조 속에서 스스로 갇혀 본질을 잃고 돈과 권력의 메카니즘에 갇혀 무가치하게 헤매다 사라지는 성찰 없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메타포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