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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세계명화](80) 백남준의 ‘다다익선’

예술과 기술의 관계

2014-03-11     이재명 기자
▲ <다다익선>, TV모니터, 1988년작,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오늘날의 예술은 첨단기술, 즉 하이테크를 활용하는 작품경향이 많다. 현대예술이라는 특성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전통적으로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리는 작품은 오늘날에는 고전적이다. 예술이란 개념이 고대의 기술개념에서 출발하여 현재에 이르지만 오늘날의 예술경향은 오히려 기술의 범위에 포함되는 고대의 경향이 뚜렷하다.

시내를 걷다보면 길가의 간판에 ‘아트’라는 말이 곳곳에 보인다. ‘헤어아트’ ‘아트네일’ 등이다. 또한 공공기관의 입간판에도 예술이라는 말은 흔하다. ‘예술의 거리’, 혹은 ‘예술의 향기’와 같은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환경에 예술이라는 개념이 매우 광범위하고 깊게 들어온 듯싶다. 그러나 거리를 지나는 우리들은 무관심하게 지나치거나 불쾌함까지 갖기도 한다. 그곳에는 진정한 예술보다 현란한 기술이 예술인양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과 기술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면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기술을 낮은 차원의 기술과 높은 차원의 기술로 구분한다. 낮은 차원의 기술은 요리와 같은 부분적 지식과 경험적 이론에 근거한 숙련된 기술을 의미하며, 높은 차원의 기술은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의식적 기술이다. 곧 의술이나 건축술과 같은 것이다.

이후의 칸트의 정의를 살펴보자. 그의 정의는 비록 고전적이지만 아직도 그의 개념을 넘는 정의는 없다. 실제 그의 정의에 의해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예술’이라는 높은 차원의 정신적 가치를 지닌 ‘예술’이 되기 때문에 그의 정의는 현재를 관통하는 바탕이자 뿌리가 된다. 그는 기술을 효용적 기술과 직감적 기술로 나눈다. 효용적 기술이란 기계적인 기술, 혹은 공업적 기술을 의미하고, 직감적 기술이란 자유의지를 가진 기술로서 쾌적한 기술과 미적 기술로 다시 구분을 한다.

쾌적한 기술이란 미용과 같은 쾌감을 목적으로 삼는 기술을 의미하며 미적 기술이란 순전한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만을 목적으로 삼는 기술로서 곧 예술을 지칭한다. 해석을 하자면 미적 기술, 혹은 예술이란 철학적인 정신적 쾌감과 아름다움을 가시화시키는 것이며 또한 그에 준하는 기술이 된다는 의미이다. 거리의 간판으로 드러나고 있는 예술은 곧 ‘쾌적한 기술’로서 칸트가 말하는 순수예술보다 낮은 차원의 쾌적한 기술로서의 유사예술이 되는 것이다.  

▲ 곽영화 화가·칼럼니스트

칸트를 지나 현대를 잇는 가교로서 헤겔은 이러한 내용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던진다. 곧 예술의 소멸이다. 일컫자면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예술화되기 때문에 예술적 기술, 곧 미적 기술이 가지는 의미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곧 길거리의 간판이 온통 예술화가 되기 때문에 예술이라는 특정한 의미가 소멸된다는 말이다.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의 각종 공산품과 거대한 건축물들, 그 속의 다양한 부속물들은 너무나 예술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마르쉘 뒤샹은 새롭게 창작할 것이 없다고 한탄하지 않았던가.

백남준선생의 TV모니터로 만들어진 ‘다다익선’은 그의 대표작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현대의 발전된 하이테크기술이 그의 작품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점은 지울 수 없다. 기술과 예술의 절묘한 만남이자 헤겔의 예지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곽영화 화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