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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소소한 세상 이야기(36)]돼지국밥

2014-04-06     정명숙 기자
▲ 배혜숙 수필가
그 여자, 꽃집 주인이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꽤 이름난 꽃꽂이 학원도 운영했지요. 특급호텔 로비의 꽃 장식을 하는 제법 잘나가는 플로리스트이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랑 여고시절 합창반도 같이 했지요. 고음이 맑은 그녀는 소프라노를, 나는 알토 성부였습니다. 어딘지 조합이 맞지 않을 것 같은 우리는 늘 붙어 다녔습니다. 그녀는 뭇 사내아이들의 가슴을 떨리게 했던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여자입니다.

그 여자가 꽃을 버리고 돼지국밥집을 연다고 했을 때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콩나물국밥도 굴국밥도 아닌 돼지국밥이라니요. 나는 돼지도 싫지만 국밥은 어릴 때부터 먹지 않았습니다. 평생 돼지국밥 같은 것은 먹지 않을 요량이었지요. 그러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혹 그녀의 삶이 국밥 속에 담긴 꾸미고기처럼 어지러운 것은 아닐까 하고요.

한동안 우린 만날 수 없었습니다. 24시간 가게를 운영하느라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지요. 손전화도 없더군요. 잠도 제대로 자 본 적이 없었을 겁니다. 우직하게 된비알을 넘은 덕에 오년이 지나 어엿한 건물주가 되었고 이십 년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기업가로 변신을 했습니다. 지난 겨울, 처음으로 그녀의 가게를 찾아갔습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그녀는 국밥집에서도 꽃이었습니다. 열다섯 봄날 그날처럼 말입니다. 난생처음 먹어 본 돼지국밥은 묘한 맛이었지요. 뱃속이 뜨끈해지는 포만감과 함께 꽃향기가 났다고 하면 믿어줄까요.

요즈음 우린 자주 만납니다. 들길을 지나 암자로 가는 걸음이 자꾸 느려지네요. 그녀는 풀 한포기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한 더미의 냉이꽃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그러다 하얗고 조그만 꽃을 따서 내 코에 갖다 댑니다. “음, 돼지국밥 냄새 난다.” 내 대답에 그 여자는 목청을 높여 까르르 웃습니다. 냉이 된장국이나 돼지국밥이 뭐가 다른가요. 모두 비타민을 듬뿍 공급하여 나른한 봄날의 피로를 확 날려주는 음식인걸요. 냉이는 제 몸의 서 너 배나 되는 긴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립니다. 그리하여 중심을 잃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합니다. 친구에게도 냉이처럼 뿌리를 내릴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겠지요. 옹이진 인생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더운 국밥을 보시했을 그녀가 냉이꽃으로 보입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녀가 있는 곳이면 돼지국밥집이든 족발집이든 꽃집이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혹여 생선가게를 한들 그 곳 또한 꽃밭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요.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