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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소소한 세상 이야기(39)]진도아리랑

2014-04-27     경상일보
▲ 배혜숙 수필가

꺼이꺼이 목놓아 울던 어머니는 울음을 그치자 쉬지 않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다간 밖으로 나가 찻길로 뛰어 들기도 했지요. 나는 그런 어머니를 지켜야 했습니다. 치맛자락을 꼭 붙들고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다 키운 딸을 시퍼런 강물이 앗아간 이후 어머니는 반쯤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결국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차를 타고 신작로를 달려 고향을 떠나 올 때, 강 쪽을 보지 않으려고 모두들 고개를 돌렸습니다.

여러 날 불면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 잠깐 잠이 들면 꿈을 꾸었지요. 잊고 있었던 언니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타나더니 출렁출렁 물살이 이는 바다를 함께 헤엄쳤습니다. 누군가 낮게 읊조리듯 진도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세마치장단에서 중모리로 넘어가면 물결이 내 몸을 거세게 휘감쳤습니다. 빠른 자진모리장단으로 넘어갈 때는 많은 아이들이 바다위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우린 함께 후렴구를 불렀습니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그리고 파도에 휩싸여 밀려갔다가 또 다시 솟구치며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를 끝없이 불렀지요. 잠에서 깨어나면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목이랑 얼굴까지 퉁퉁 부었습니다. 언니가 강물에 빨려 들어가듯 사라진 그 여름날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해열제나 진통제가 소용이 닿지 않았습니다.

‘시퍼런 물이 싫다 싫어’ 곡조까지 얹어 낮게 노래를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영화 서편제에서 떠돌이 소리꾼 유봉과 그의 아들과 딸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황톳길을 걸어가던 모습이 목울대를 뜨겁게 하여 가슴을 파고듭니다. 어머니의 장탄식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진도 아리랑을 종일 듣습니다. 진통제보다 효과가 있네요. 진도 아리랑은 판소리의 구성진 목청이 어우러져 그 맛이 진득합니다. 우리는 슬플 때는 슬픔을 잊기 위해, 기쁠 때는 기쁨을 나누기 위해 아리랑을 불렀지요. 지금, 모질고 가혹한 현실이 또 다른 진도 아리랑이 되어 꿈틀꿈틀 이 땅을 요동치게 합니다.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고나 갈 길을 왜 왔던고~’ 겹겹이 쌓인 한을 안숙선 명창은 어찌 그리 구슬픈 소리로 승화시켜 내는지요. 육자배기 가락에 구성진 아리랑이 지금 진도 앞바다를 휘감아 질펀하게 번져나고 있습니다.

‘퍼런 물은 싫다 싫어’ 어머니는 이 말끝에 중얼중얼 메나리조의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어쩌면 아리랑은 그렇게 자신을 달래고 또 가라앉혀 말갛게 잊어가는 노래이지요.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