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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소소한 세상 이야기(40)]밥값

2014-05-11     경상일보
▲ 배혜숙 수필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연등을 달았습니다. 동네의 절집에도 산비탈의 가난한 토굴 법당에도 등 공양을 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연등을 다는 곳은 따로 있습니다. 경북 영천, 팔공산 자락에 숨어 있는 백흥암입니다. 맑은 산사에 등불 하나 밝히는 일은 나를 찾아 나서는 길이 되곤 했습니다.

백흥암은 비구니스님들의 수행도량입니다. 일 년에 딱 두 번 보화루 문이 활짝 열리지요. 부처님 오신 날과 백중날입니다. 계율과 수행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곳이지만 부처님 생신날만큼은 야단법석 잔칫집 분위기랍니다. 온갖 꽃이 만발한 절집에는 색색의 연등도 피어납니다. 무엇보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무쇠 솥에 참나무로 불을 지펴 지은 밥에 스님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열 가지도 넘는 반찬으로 공양을 할 수 있답니다.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일 년을 기다려 찾기도 합니다.

올해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보화루 문을 들어서자 긴장감이 들어 마음이 낮게 가라앉았습니다. 활짝 핀 흰 모란과 황금 붓꽃에도 눈인사만 했지요. 수미단에 조각된 화엄세계에도 법당의 장엄에도 취하지 않고 부처님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절을 올렸습니다. 명부전 앞에는 하얀 영가 천도등이 많이 달렸습니다. 등이 활처럼 휜 백발의 할머니가 영가등을 향해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습니다. 나도 얼른 합장을 하며 많은 이들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이창재 감독의 ‘길 위에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작년 한해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지요. 감독은 300일 동안 금기의 공간인 백흥암에 머물면서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과정을 가감 없이 녹여냈습니다. 백흥암의 아름다운 사계와 함께 비구니들의 일상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카메라는 묵묵히 따라갑니다. 영화에서 겨울수행을 마친 스님들에게 “너는 밥값을 하였느냐”라고 선원장인 영운스님은 묻습니다. 이 땅의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이기도 했습니다. ‘밥 한 바루가 피 한 바루’라고 힘주어 말하던 영운스님이 극락전 마당을 서성이는 내게 아침 공양을 하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습니다. “이 봄에 너는 밥값을 하였느냐” 어디선가 우렁우렁 울리는 소리가 들려 부끄러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밥값만 제대로 한다면 순탄한 항해는 계속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닌가봅니다. 밥값을 하지 못한 무지하고 몽매한 사람들 때문에 혼란은 끝이 없고 분노는 고빗사위를 치닫고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밥값을 못한 나는 하얀 영가등 하나를 밝히고 산문을 나왔습니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