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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학의 디자인 이야기(5)]“왜, 무엇을 위해 디자인하는가?”

2014-05-27     경상일보
▲ 안병학 울산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1. 1974년 이탈리아. 일찌감치 산업 부흥이 일었던 영국과 달리, 전후 가난을 면치 못했던 이탈리아. 이런 배경속에 태어난 엔조 마리(Enzo Mari)의 ‘디자인 자급자족(프로게타지오네, Autoprogettazione) 프로젝트’. 가난 속에 인문학과 예술을 스스로 공부했던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엔조 마리는 그 시대 통용되던 일반적 의미의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거부한다. 디자인이 ‘누군가를 위해 쓰일 수 있는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아닌 ‘상업적 필요를 위해 차이를 만들어 내는 일’로 전락했다고 생각한 그는 다른 디자이너들이 많이 팔리는 가구를 디자인하는데 집중하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판자와 못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19종의 가구 도면을 제작해 무상으로 나눠준다. 디자인이란 결국 ‘아름답고 유용한 사물을 만드는 것’이기 이전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의 디자인 어디에서도 형태와 기능에 대한 근원적 실험 이외에 불필요한 수사적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2. 2014 대한민국. 2010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디자인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문화를 풍요롭게 함으로써 시민 삶의 질을 개선하자는 취지로 국제 디자인연맹(IDA)과 국제 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ICSID)이 주관하는 ‘세계 디자인 수도(World Design Capital, WDC)’에 선정된다. 그 상징적인 사업의 하나로 서울의 오랜 역사성을 간직한 동대문 운동장 터에 런던에서 활동하는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가 들어섰다. 한국 디자인진흥원이 조사하고 ‘월간디자인(디자인하우스 발행)’이 정리한 ‘디자인 산업에 대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는 매년 3만8000여명의 디자인 전공자를 배출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3. 왜, 무엇을 위해 디자인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디자인과 산업성장의 상징이 된 DDP에서는 지금 이윤과 성장에 몰두하는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거부하고자 했던 엔조 마리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근원적 형태와 사회적 현실을 직시했던 그의 디자인 철학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오늘 우리에게 ‘삶을 디자인하는 디자인’이라는 교훈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무엇을 위해 디자인하는가?

안병학 울산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