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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소소한 세상이야기(44)]세놓습니다

2014-06-08     경상일보
▲ 배혜숙 수필가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화로 해운대와 송정 사이의 기찻길이 폐 선로가 되었습니다. 해운대의 미포에서 바다로 쑥 빨려 들어가듯 달리다 살짝 비켜 청사포를 거쳐서 구덕포로 빠지는 이 구간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기찻길로 뽑히기도 했지요. 그 철길 4.8㎞가 걷기 코스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습니다.

휴일을 맞아 식구들과 기찻길을 걷습니다. 짧은 달맞이재 터널도 통과하지요. ‘잠깐 멈춤’이란 표지판 앞에서 쉬기도 합니다. 진정한 여행자는 걸으면서도 자주 앉는다고 하니까요. 배낭을 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지나갑니다. 젊은 부부가 아기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왔네요. 세 사람이 함박웃음을 터트립니다. 철길 위엔 연인들도 있군요. 노부부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보폭을 맞추며 걸어갑니다. 그런데 곳곳에 많은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철도시설공단이 레일바이크 같은 상업적 시설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웠답니다. 이 위험한 발상을 저지하려는 구호들입니다. ‘머라카노 시민꺼다’ 부산 사람의 기질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문구 앞에서 발을 멈췄습니다. 그렇고말고요. 길 자체로 이미 관광객이 찾는 문화상품이 되었는걸요.

청사포를 지납니다. 지붕 낮은 집에 ‘세놓습니다’ 삐딱하게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네요. 주인은 떠났는지 빈집입니다. 담장 밑에 오종종하게 핀 노란 괭이밥이 손짓을 합니다. 마당 한켠은 길 고양이가 차지한 채 낮잠에 빠졌군요. 그 집을 세 얻어 추억을 팔고 싶습니다. 삶은 계란과 김밥, 다섯 개들이 밀감주머니도 괜찮겠지요. 노루표 페인트 두어 통만 있으면 꽤 쓸 만한 기찻길 옆 오두막이 될 것 같습니다. ‘머라카노 니가 부산시민이가’ 누군가 호통을 칩니다.

집이 아니라 기찻길을 시민들에게 ‘영구임대’ 하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덤으로 얹어서 말입니다. 얼키설키 엉킨 칡넝쿨 같은 세상사를 벗어난 청정지대 한 곳쯤은 있어야지요. 상업주의가 판을 치는 곳에서 비켜난 완충지대도 필요합니다. 철길에 녹아든 80여년의 역사를 보존하도록 시민의 품에 안겨주면 좋겠네요. ‘기찻길을 영원히 세놓습니다’ 동생이 건네준 메모지에다 고딕체로 썼습니다. 산책길 끝점인 옛 송정역사에 엇비스듬하게 붙였지요.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