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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조의 세상만사]관서정(觀逝亭)

1600년대 선비 김경이 세운 정자 관서정
300여년 사연 뒤로 하고 퇴락한 채 방치
지역 향토문화사의 한 부분 복원시켜야

2014-06-23     경상일보
▲ 신국조 울산과기대 석좌교수·서울대 명예교수

조국 근대화의 선진 기지이며 산업도시로 널리 알려진 울산지역에는 유서 깊은 역사적 건물과 장소가 많이 있다. 그 중에 OO루(樓) 또는 OO정(亭)으로 불리는 건물이 울산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다. 지금은 고래암각화로 더 유명하지만 전에는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가 유배되었던 것으로 유명했던 울주군 대곡리의 반구대(盤龜臺) 건너편 길가에 300년 역사를 가진 집청정(集淸亭)이 있다. 집청정 근처에는 후세에 포은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지은 모은정(慕隱亭)도 있다. 영남알프스의 하나인 신불산 자락의 작괘천에는 계곡의 너럭바위 위에 지은 작천정(酌川亭)이 있다. 울산시 남구 신정동에는 울산도호부의 객사였던 이휴정(二休亭)이 있다.

얼마 전에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3루의 하나로 꼽히는 태화루(太和樓)가 울산의 태화강변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400여년 만에 웅장하고도 우아한 자태로 복원되었다. 이보다 훨씬 규모가 작으나 2011년에는 역시 태화강변에 오산(鰲山) 만회정(晩悔亭)이 중건되었다. 만회정은 조선 중기에 여러 지역의 부사를 역임한 박취문(朴就文)이 교우와 휴식을 위하여 세웠던 것으로 1800년대에 소실됐다.

인적이 드문 울주군 사연리 곡연마을을 지나 울산과기대 후문으로 가는 길의 왼편에는 개울이 흐르고 돌로 쌓은 제방이 보인다. 오른편으로는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전혀 보이지도 않지만 그 속에 퇴락된 정자가 하나 서 있다. 이 정자는 1600년대에 김경(金敬)이라는 선비가 세웠다. 반구대를 향하던 당시 울산부사 권상일(權相一)이 이 정자 옆을 지다가던 중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에 끌려 들렸다가 김경과 교우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권부사가 임지를 옮겨 떠나게 되자 떠나가는 벗의 모습을 보아달라는 의미에서 정자의 이름을 관서정(觀逝亭)으로 지어 주었단다.

아마도 그 시절 관서정의 맞은편에는 지금도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암벽에 부딪혀 굽이치는 물결이 흐르는 멋진 경관이 펼쳐졌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울산시의 식수원 조달을 위한 사연댐의 건설로 인하여 더 이상 이런 경치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관서정은 그 후 후손들에 의하여 몇 번의 개축을 거쳤으나 현재는 비참한 상태이다. 어지러운 대나무 숲과 우거진 잡초 사이를 힘들게 헤치고 들어가 가까이서 올려다 본 현판은 누구의 글씨인지는 몰라도 중후하면서도 활달한 멋을 풍기는 명필로 씌어져 있다. 과연 누구의 글씨일까. 아직도 걸려있는 주련에는 관서정 앞으로 흘렀던 대곡천의 맑고 시원하고 차가운 물줄기를 노래한 듯 ‘청냉한간수(淸冷寒澗水)’라는 글씨도 보인다.

태화강변에 태화루와 만회정이 있는 것처럼 대곡천에는 반구대 근처의 집청정과 사연리 곡연마을의 관서정이 있다. 하지만 관서정은 지금 다 허물어져가고 있다. 울산지역 향토문화사의 한 부분이며 300년에 가까운 역사적 사연을 간직한 관서정이 이렇게 방치되어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나아가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민족을 표방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관서정을 함께 살펴 본 후 어느 지인은 이런 소감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막 보고 온 관서정이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또 다른 지인은 ‘보내주신 글을 읽고 나니 저도 보고 온 정자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가만 있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라는 글을 보내주어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내었다.

지금 울산 12경의 하나로 꼽히는 울주군 입암리의 선바위 일대에는 ‘선바위공원’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선바위 뒤쪽에 있었다가 허물어진 입암정(立巖亭)도 태화루처럼 복원시킨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정든 벗이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정자’라는 정취 있는 이름을 지닌, 그러나 지금은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유서 깊은 관서정(觀逝亭)도 다시 살리자.

신국조 울산과기대 석좌교수·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