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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소소한 세상이야기(47)]마침표

2014-06-29     경상일보
▲ 배혜숙 수필가

어둑한 박물관에서 신라의 기와들과 흙내 나는 인사를 합니다. 얼굴무늬 수막새에 마음을 빼앗겨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도깨비기와가 옷자락을 슬며시 잡아끕니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망와입니다. 툭 튀어나온 눈, 커다란 뿔, 날카로운 이빨에 들창코는 두려움이 아니라 친근감을 줍니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방망이만 있으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도깨비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 자랐으니까요.

망와(望瓦)는 지붕의 마루 끝에 세우는 우뚝한 암막새입니다. 기와지붕의 용마루가 좌우로 거침없이 뻗어 나가다가 사뿐한 곡선 끝에 망와를 얹어 마침표 하나를 분명히 찍는 것입니다. 도깨비 망와는 높은 용마루 끝에서 잡귀의 침입을 막아주는 벽사의 역할도 했지만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염원을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바랄 망(望)의 망와가 되었지요.

아들을 결혼 시킨 이웃이 그러더군요. 마침표 하나를 찍었다고. 그럴 리가 있나요. 그건 시작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해 주려다 그만두었습니다. 금방 알게 될테니까요. 산뜻하고 뚜렷한 문장 뒤에 찍는 온점, 위트가 들어간 맛깔스러운 글발 끝에 오는 느낌표는 확실한 마침표가 됩니다. 그러나 인생살이에는 그런 마침표가 없습니다.

아들이 결혼을 하고 식구가 늘어나자 소망도 그만큼 커졌습니다. 번민도 그에 비례해 늘어갔습니다. 근심 보따리를 풀려고 자주 부처님 앞에 나가 엎드려 절을 했지요. 그런데 절집 마당에 들어설 때 마다 용마루 끝을 막음한 망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어미들은 지붕 끝에 앉은 망와가 아닐까요. 높은 곳에서 멀리 내다보고 ‘훠이훠이’ 잡귀를 쫓아내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부릅뜬 눈과 날카로운 이빨로 혼신을 다해 막아내기도 합니다. 때론 간절히 기도하며 가족들의 안녕을 빌고 또 빌지요. 눈물 바람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자식들 뒤에 내버티고 선 마침표 일지도 모릅니다.

박물관을 나오다 다시 돌아섭니다. 용마루 끝의 우뚝한 마침표가 아니라 간이역 같은 쉼표 하나 찍어달라고 부탁을 해봅니다. 도깨비 방망이 한번 휘두르면 되지 않을까요.

배혜숙 수필가



(배혜숙의 소소한 세상이야기는 ‘마침표’를 끝으로 마무리합니다. 다음주부터는 극작가 장창호씨가 ‘장창호의 하하하 삼국유사’를 연재합니다. 좋은 글 써주신 배혜숙 수필가와 애독해주신 독자여러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