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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칼럼]이데올로기의 힘

학생간의 학업수준 차이 엄연히 존재
자사고 폐지는 합리적인 선택 아니야
진학 선택의 폭 합리적으로 넓혀줘야

2014-11-24     경상일보
▲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필자에게 평준화의 기억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차이가 나는 학생들이 한반에서 지내야 하는 일은 학생들도 고역이지만 선생님들에게 힘든 일이었다. 언론이나 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려진 오늘날 학교 분위기는 필자가 평준화된 학교를 다닐 때보다 오히려 더욱 악화된 것 같다. 교사의 이야기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 시대에 많은 아이들이 잠을 청하거나 딴짓을 하면서 수업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다. 실력 있는 학생도 고역이고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도 고역일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이따금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은 사람 사이에 격차라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이다. 유전적인 특성이나 후천적인 열의, 태도는 격차를 발생시킨다. 그 격차를 뛰어넘는 일이 불가능은 아니지만 사람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구조적인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민주주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평등을 지고지순의 가치로 받아들이며 형식적인 평등에 동의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평등한가는 더 현실적인 고민을 요구한다.

우리 사회는 여러 면에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고 더 합리적일 필요가 있다. 격차가 존재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격차를 마치 없는 것처럼 외면할 수는 없다. 오랜 기간 동안 평준화를 통해 우리는 부분적으로 격차를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로 결정한 바가 있다. 그것이 다수의 일반고 속에서 일부 자사고를 인정하는 실험이다. 서울시교육감이 7월 취임 직후부터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를 추진하고 있지만 올해 서울 지역 자사고에 예년보다 더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21일 마감된 서울시내 24개 자사고의 신입성 원서 접수 결과 지난해 1.58대1이던 평균 경쟁률은 올해 1.69대1로 증가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황폐해졌다”는 논리로 무리하게 자사고 폐지를 추진, 학부모는 물론이고 교과부와 갈등을 빚어왔다. 그런데 자사고에 학생들이 몰린 이유에 대해 입시 전문가들은 “학생과 학부모들은 자사고가 좋은 면학 분위기와 다양한 교내 활동을 보장하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한다. 우리의 지식과 판단은 불확실할 수 밖에 없다. 지식인들이라고 해서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식인들의 황당하고 이상적인 주장이나 의견이 사회를 상대로 실험을 한 결과 얼마나 많은 폐해를 낳곤 했는가. 엄청난 사회적 실험을 마치고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 다음 인류는 다시 제갈 길을 되찾기도 했다.

우리가 가진 지식이 불확실할 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판단은 가능한 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늘려가는 길이다. 그러니까 어떤 특정인의 지식에 바탕을 두고 어떤 제도나 정책을 결정하는 사회적 선택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선택을 줄이고 가능한 개인적 선택의 폭을 넓히는 일이다. 나는 지식인들일수록 지적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가진 지식이 일반인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엄연하게 차이가 있는데 마치 그것이 없는 것처럼 모든 학교를 일반고로 만들 필요가 있는가. 그것은 합리적인 선택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선택도 될 수가 없다. 불편하기도 하고 힘들더라도 가능한 경쟁을 통해서 더 나은 방법이나 제도가 계속해서 나올 수 있도록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쪽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자사고 폐지 여부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걸출한 사회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폰 미제스의 주장 즉, “인류의 역사는 이데올로기 혹은 아이디어의 역사이다”를 떠올리게 된다. 올바르지 못한 신념이나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발전 방향도 엉뚱한 쪽으로 향하도록 유도하게 된다. 결국 개인이든 그들이 모인 사회든 간에 생각이나 신념에 따라 나아가며 그것에 걸맞은 결실도 거두게 된다. 평등할 수가 없는데 평등을 강제하는 일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교육뿐만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 감에 있어서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